조선시대(朝鮮時代)/조선 회화(繪畵)

우봉 조희룡 필 묵국도 외 7폭 (又峰趙熙龍筆墨菊圖外七幅)

鄕香 2012. 2. 2. 14:49

 

 

조희룡(趙熙龍. 1789-1866)은 평양 조씨로 자는 치운(致雲), 호는 우봉(又峰), 철적(鐵笛), 또는 호산(壺山) 등 입니다.

중인(中人) 출신으로 김홍도(金弘道)를 비롯한 화가들과 중인들의 전기(傳記)를 엮은 《호산외사》(壺山外史)를 펴내기도 하였으며

산수, 매화, 난 등의 그림에 뛰어났고, 시와 추사체(秋史體)의 서예도 잘 하였습니다.

현종의 명을 받아 금강산의 여러 곳을 초필(草筆)로 그렸던 적이 있고, 1854년 66세 때는 전라도 임자도에 유배되기도 하였습니다.

 

난죽(蘭竹)에 못지 않게 채색 나비 그림에도 뛰어났던 조희룡은 역시 나비 그림으로 유명한 남계우(南啓宇)보다 한 세대 앞서는 작가입니다. 19세기 중엽에는 나비 그림이 크게 성하였으며, 고운 설채(設彩)와 함께 화사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이러한 나비 그림들은 세로로 긴 화면을 이용해 화훼화(花卉畵)와 곁들여진 경우도 있고, 소폭 나비 그림들만으로 꾸며진 화첩도 여럿 전합니다.

이 그림들은 매화 2점, 묵란 2점, 국화 2점, 묵죽화 2점 모두 8점으로, 조희룡의 작품에서 국화는 흔치 않습니다. 조희룡은 특히 매화에 심취하여 방에 매화병풍을 두르고 매화시경연(梅花詩境硯), 매화서옥장연(梅花書屋藏烟)으로 매화백영루(梅花百詠樓)에서 매화백영시(梅花百詠詩)를 짓다가 목이 마르면 매화편차(梅花片茶)를 마셨다고 매화벽을 밝혔습니다.

그는 초기에 매화줄기를 입체적이고 괴량감 있게 그리다가 점차 평면화 시키고 있는데, 이 작품에서 보여지듯 줄기 한쪽에 진한 묵면을 두고 그 위에 농묵으로 분방하게 점을 찍어 개성적인 매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매화는 조선말기 중인 화가들에게 애호되어 많이 그려졌는데, 이에는 임포(林逋)의 고사와 관련해서 자신의 처지를 기탁하는 의미가 있었다고 할 수 있으며 매화의 화사한 색감이 장식적인 효과를 갖추고 있어 동시대에 인기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第六幅)

 

<第 1, 2幅>

     

 

<第 3, 4幅> 

     

 

<第 5, 6幅>

     

 

<第 7, 8幅>

     

 

우봉 조희룡 필 묵국도 외 7폭 (又峰趙熙龍筆墨菊圖外七幅)

조선시대 / (軸) 紙本淡墨淡彩 (各) 65.4×47cm / 국립중앙박물관 所藏(德3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