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화첩은 낱장으로 분리되어 있는데 현재 그 가운데 3점만이 확인됩니다.
그 중 '총석정'에 "을묘중추사 증 김경림. 단원(乙卯仲秋寫 贈金景林.檀園)"이라는 관서가 있어서 1795년8월 김경림에게 그려준 작품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경림(景林)은 김한태(金漢泰)의 字입니다. 김한태(1762~?)는 본관이 우봉(牛峰), 號는 영원(寧遠)으로 역관(譯官) 절충장군 첨추 이서(折衝將軍 兼樞履瑞)의 아들로 본인도 역관이었습니다. 1786년 식년시(式年試) 역과(譯科)에 합격하여 역과방목(譯科榜目)에 자헌대부(資憲大夫)까지 올랐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관직은 한학교회(漢學敎誨), 지추(知樞)를 지냅습니다. 소금장사를 했다는 전문(傳聞)이 있으며 당시 한양의 첫째가는 거부(巨富)로 유명했습니다. 그의 엉청난 富와 화려한 생활상, 그리고 나아가서 정경유착적(政經癒着的)인 면면들은 이조원(李肇源1758~1832)의 옥호집(玉壺集)에 보이는 대고(大賈)라는 서사시에 비판적으로 읊어져 있습니다. 시인묵객들과 교유하기를 좋아하였으며 특히 김홍도를 후대하였다고 합니다. 마지막 내용은 오세창(吳世昌)선생이 전한 것인데 그 처숙부(妻叔父)가 김한태의 후손이었다고 하므로 신빙성이 높습니다.
이 총석정 그림의 관서(款書) 右上의 두인(頭印)은 백문타원인(白文楕圓印)으로 인문(印文)은 '心醉好山水'(좋은 산수에 마음이 취하네.)이고 말미와 백문방인(白文方印)은 '김홍도인'입니다. 관동의 천하 절경인 총석정을 자그마한 화폭 속에 무한한 공간과 독특한 시정이 느껴지도록 그려내었습니다. 그 공간감의 확보는 구도상 우상(右上)에서 좌하(左下)로 그어지는 대각선의 아래편에 주요 경물을 몰아 붙이고 윗편을 상대적으로 탁 트이게 함으로써 이루어졌습니다. 그리하여 주제인총석을 화면의 정중앙에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공간은 전혀 옹색해 보이지 않습니다. 우변 전후의 소나무 크기의 현격한 대조는 원근의 깊이를 시사하며, 나란히 선 총석들의 농담의 변화 역시 절묘하게 이를 뒷받침합니다. 특히 좌변의 파도가 뒤로 가면서 점점 작아지고 흐려져서 白面化하는데에서는 무한한 공간감과 시정이 느껴집니다. 바위에 부딪치는 물보라 위로 날아가는 두마리 물새 역시 드넓은 공간을 효과적으로 시사하면서 화면에 생동감을 줍니다.<叢石亭>은 단순한 진경산수라기보다 보는 이에게 한 편의 아름다운 寫景詩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켜 줍니다.
김홍도 필 총석정(叢石亭)
朝鮮時代 / 金弘道(乙卯年畵帖51세그림) 紙本淡彩 23.2 × 27.7cm / 個人所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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