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복은 양관(梁冠) . 청초의(靑綃衣) . 적초상(赤綃裳) . 백초중단(白綃中單) . 폐슬(蔽膝) . 대대(大帶) . 혁대(革帶) . 패옥(佩玉) . 후수(後綬) . 말(버선襪) . 혜(가죽신鞋) . 홀(笏) 등으로 구성됩니다. 基本形製는 조복과 같은 것이나, 赤綃衣 대신 靑綃衣이며, 청초의 깃에 方心曲領을 더한 것이 다릅니다.
김병기(金炳冀)유품인 조선조말기의 이 제복은 청초의인 흑삼으로 감은 紗이며 깃 도련 袖口의 길과 같은 감, 같은 색의 선을 둘렀습니다. 直領에는 흰색 사로 심지없는 백동정을 달았으며, 후수를 달도록 홍색끈으로 만든 작은 고리와, 혁대걸이용 흑색 끈이 양 겨드랑이 밑에 달려 있는 점 등 홍삼의 製式과 동일하나 색과 방심곡령이 다릅니다. 방심곡령은 흑삼과는 별도로 첨가하여 착용한 것으로 벗으면 깃만 따로 덜어집니다.
이 옷의 주인 김병기《金炳冀 1818(순조 18)~1875(고종 12)》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중심인물로 본관은 안동. 자는 성존(聖存), 호는 사영(思潁). 판돈녕 영근(泳根)의 아들로 영의정 좌근(左根)에게 입양되었습니다. 1847년(헌종 13)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이듬해 사복시정(司僕寺正)이 되었고, 1849년(철종 즉위) 대사성이 된 뒤 예조참판·이조참판을 지내으며, 1852년 대사헌을 거쳐 평안도관찰사가 되었습니다. 그뒤 이조판서·어영대장·판돈녕부사·호조판서 등 요직을 두루 지냈으며, 1862년에는 삼남지방으로부터 시작된 민란의 대책을 강구하기 위하여 설치한 삼정이정청(三政釐整廳)의 구관당상(句管堂上)이 되었습니다. 고종이 즉위하고 흥선대원군이 정권을 잡자 잠시 한직으로 물러났으나, 다시 기용되어 병조판서·의정부좌찬성·예조판서·이조판서 등을 두루 역임했습니다. 저서에 〈사영집〉이 있으며, 시호는 문헌(文獻)입니다.
흑삼(黑衫)
朝鮮19世紀 / 紗 / 길이 95.5 cm, 화장 84 cm, 진동 29.5cm, 뒷품 44cm, / 高麗大學校博物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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