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간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설레기는 매한가지
산행을 앞두고 종일 집에서 마음은 바쁜데 준비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드디어 오후 21시 집을 나서는데 오던 비는 멈추고 촉촉한 밤공기가 향내를 담아 마음을 포근히 감싸줍니다.
이렇게 야시한 밤에 집을 나서 어딘가 떠난다는 것에,
아이가 부모의 통제를 벗어나 자유롭게 뛰는 망아지처럼은 아니더라도 이리 즐거울 수가 없습니다.
다른 이 직장에서 묵이 되어 발걸음도 무겁게 집으로 가는데...
나는 배냥 매고 집을 나온다! 괜스레 웃음이 납니다.
이것이 고독한 자의 福?
버스를 타고~~ 전철을 타고 ~~ 야시하게 내리니, 또 다른 버스가 반기며 배시시 웃습니다.
너도 좋냐! 난 정말 즐거워 죽겠다. 좋아도 죽고 슬퍼도 죽는 것이 우리네 삶이지..
버스야 정말 행복해! 이 밤을 잘 부탁해요.
이렇게 버스에 오르니 선택권은 이미 박탈(?)되고
뒤쪽 한 곳에 있는 2인석 좌석에 통로쪽은 이미 주인이 있는지 배낭이 자리를 차지 하고 있고
창가쪽이 비웠기에 앉아서 숨을 돌리는데 우람한 주인이 오신다.
알고 보니 이 분이 아띠 창을 늘 곱게 꾸미시는 한범님이랍니다.
어찌나 체격이 좋은지 나는 더욱 위축되고 더욱 작아지는 모양샙니다.
더구나 차 안쪽으로 앉은 한범님의 집채 같은 몸집에 갇혀 숨을 쉴 수없이 옴짝달싹도 할 수 없는 내 몸이 안타까워
고개를 돌려보니 좌석 맨 끝 5사람이 앉을 수 있는 자리에 빈자리가 셋이 보이는데,
옮기자니 한범님의 눈치가 보이고 해서 그냥, 망설이고 있는데
버스가 출발합니다. 오, 빈자리구나! 순간 한 줄기의 서광이 비칩니다. 저의 핑계거리가 생긴 거지요.
"아무래도 내가 저 뒷자리로 가야 웅장하신 한범님이 편하시겠지" 능청을 떨고는 누가 뒷덜미라도 잡을 세라
뒤도 옆도 안보고 날쌘돌이처럼 늘씬하고 멋진 '봉주르'님 옆으로 가니 세상에 이 보다 더 좋을 수가 없습니다.ㅎㅎ
버스 안이 한 눈에 보이는 가장 높은 자리에 그것도 아름다운 여대장님이 옆에 계시니,
'빙고'도 이런 빙고는 없습니다.^^
버스도 이런 내맘을 알기라도 하는 듯 어둠을 가르며 경쾌하게 잘 달려줍니다.
도중 백양사휴게소에서 콩나물밥으로 시장끼를 달래고 도착한 오늘의 월송 들머리에서
선두에 선 '무조건'대장님,
그 분의 닉이 말 하듯 무조건 갑니다. ㅎㅎ
밤이니 뒤쳐져 오리 알 되지 않으려면 무조건 저 무조건대장을 따라가야겠지 마음을 다지고,
대장을 바짝 따르다가 뒤를 보니 예쁜 자매님 한 분 랜턴이 없으시다 어쩌나 내 것을 드릴 수도 없고
자꾸 뒤를 보게 되고 그 자매님은 내 불빛에 미간을 좁히시기에. 나도 따라 불을 끄고 보니 갈만합니다.
이제, 마음이 좀 놓입니다.
희뿌옇게 여명이 찾아들 때 처음으로 맞은 봉우리 날카로운 송곳니를 세우고 내려다보지만,
비록 몸은 작아도 기죽을 몸이 아닙니다.
몸이야 작지만 머리에 무한한 생각이란 우주를 담았으니 헤아릴 수 없이 넓고
또한 독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 아니겠어요.
곳곳에 진달래 철쭉 이름 모를 꽃들로 유혹하고 있는 길에는
작은 방심이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도사리고 있는 칼날보다도 날카로운 모(矛)를 세워 만용에 경각심을 주지만,
참으로 멋진 봉우리는 운무를 드리웠고 그 선계를 오르내리며 절경에 매료되어 그 경각심 잊기를 그 몇 번이었던가..
형제자매님들은 그 절경을 영원한 추억으로 붙잡으려고 순간을 잡아챕니다.
오늘 참 잘 왔다는 생각에 절로 즐겁습니다.
평상생활에서는 그리도 조용한 성품이 그저 산에만 오면 앞으로 치고 돌아서 내리 치고 오르내리는 내 모습은
마냥 즐겁습니다. 아이처럼~~ 망아지처럼~~~ ㅎㅎ
그렇게 오르면 또 다른 선계가 나를 반깁니다.
사람도 자연으로부터 생성된 아주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기에, 자연은 어머니요 우린 그의 자식이겠지요.
어머니의 품에 자식이란 한없이 여리고 순박할 수밖에 없기에
메마른 사회에서 오염된 생각들을 어머니의 품속에서 치유하고 자는 본질적 심성이지요.
오르고 감탄하고 올려다보며 심호흡하길 얼마였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비몽사몽에 취해 있을 때 불쑥 나서는 큰 길이 이제까지의 선계의 꿈을 깨워 세웁니다.
좁은 마을길 포근한 남녘 작은 마을이 동심으로 붙잡고 바닷가 공터에서
그리도 경쾌하게 실어다 준 버스가 반깁니다.
그런데 더욱 나를 감격시킨 것은 길쭉한 키에 가사님, 아 글쎄 이게 뭡니까!
바닷가 정자가 호젓한 곳에 군대에서 시리도록 본 커다란 짬밥 통에 미역국을 하나 잔뜩 끓여
80명을 고루 퍼주시는데 그 미역국 맛이 그렇게 좋더군요
한 분도 남김없이 그 큰 그릇을 말끔히 비우시더라고요.
미역국을 좋아하는 저야 물론 그 큰 그릇으로 두 번이나 먹었습니다.
선두로 내려온 덕분에 끓이자마자 한 그릇,
다들 드시고 나서 또 한 그릇 ㅎㅎ
다시 돌아오는 길은 아쉬움도 담을 자리 없이 수많은 기쁨으로 가득한 포만감에
그만 카메라를 차에 두고 온 지금 사진도 올릴 수 없고 그 기쁨을 토해 낼 길이 없어
이렇게 두서없는 올을 풀어 봅니다. 알프스대장님 정말 고맙습니다.
또한 그 멋진 기사분 내 살아온 동안 난생처음 당해본 감격이고 멋진 추억에 고마움과 아울러
늘 좋은 일만 가득하시리라 믿습니다.
함께 한 형제자매님이나 못하신 분 모두에 감사드립니다. 버스에 놓고 온 사진기는 다음날 잘 받았습니다.
2009/4/16 -仁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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