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민황태자 (영친왕) 이은〈懿愍皇太子(英親王) 李垠1897-1970〉은 고종황제(高宗皇帝1852-1919)와 순헌황귀비(純獻皇貴妃1854-1911)의 아드님으로 덕수궁 숙옹재에서 탄생하셨다. 1900년 영친왕에 봉해지셨고, 1907년 황태자로 책봉되셨지만 그 해 12월 일제의 강압에 의해 일본 유학길에 올라 일본에서 철저한 주입식 교육을 받았다.
1920년 일본 왕족인 '나시모토 노미야 마사코'와 정략혼인을 한 후 두 아들, 이진 · 이구를 낳았으나 첫 아들 이진은 1922년 덕수궁에서 세상을 떠났다. 1926년 순종황제의 승하 후 명목상 李 王이 되었으며, 일본의 책략에 의해 일본 육군사관학교 교수부장, 육군 중장으로 근무하였다. 1945년 해방을 맞아 귀국을 원했으나 이승만 정권에 의해 무산되었다. 1963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시대에 대한민국 국적을 얻어 귀국하게 되었지만, 이미 병세가 악화되어 병상생활을 하다가 1970년 5월1일 창덕궁 낙선재에서 73세로 세상을 떠나셨다.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에서는 황태자의 예우로 시호(諡號)를 의민(懿愍), 원호(園號)를 영원(英園)으로 하고 고종황제의 홍릉(洪陵) 동쪽에 원을 마련하였으며 3년 후 종묘 영녕전 16실에 신주가 모셔졌다.
의민황태자비(英親王妃 마사코/方子1901-1989)는 일본 왕족 모리마사 친왕의 따님으로 1963년 대한민국 국적을 얻어 귀국 후 사회봉사 사업에 힘써 신체장애자 재활협회 부회장을 역임하면서 사회복지법인 명휘원을 설립하셨다. 열악했던 장애인의 복지와 자립을 위한 삶을 사시다가 1989년 4월30일 창덕궁 낙선재에서 89세로 세상을 떠나 英園에 합장되셨다. 저서로는 『지나온 세월』 ·『세월이여 왕조여』 등이 있다.
영원은 조선 왕릉의 형식으로 조성되었다, 수라간과 수복방은 없다.
정자각(丁字閣) 황제의 아드님은 太子 또는 王이기에 능 갖춤에 맞춰 장자각과 석물을 갖췄다.
《의민황태자(영친왕)영원비각》 懿愍皇太子(英親王)碑閣
《의민황태자(영친왕)영원비》 '懿愍皇太子(英親王)碑'
대한 大韓
의민황태자 영원 懿愍皇太子 英園
의민황태자비부좌 懿愍皇太子妃祔左
정자각에서 바라본 영원(英園) 언덕과 그 우측에 황세손 이구의 황토색 봉분이 보인다.
의민황태자(영친왕) · 의민황태자비부좌 (영친왕비) 영원(英園)
봉분은 병풍석 없이 난간석을 설치하고 석양, 석호, 망주석, 혼유석, 장명등, 문·무인석, 석마 등이 배치되어 있다.
2023년 5월1일 -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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