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先史)/원삼국 三韓時代(馬韓.辰韓.弁韓

동정(銅鼎).(울산 하대리)

鄕香 2008. 12. 13. 14:48

 

 

동정은 중국의 상주(商周) 이래로 사용된 중요한 禮器의 하나로서, 신분을 나타내고 정치적 권위를 상질하는 물건입니다.

周代에는 신분에 따라 사용에 엄격한 차등이 있었고, 鼎을 옮기는 것은 곧 나라를 잃는다는 상징적 의미를 지녔습니다.

<< 禮記>>에는 "士는 1 혹은 3鼎, 大夫는 5鼎, 卿은 7鼎, 諸侯 및 天子는 9鼎을 쓴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시분에 따라 크기와 형태에서 차이가 있고, 대체로 중앙에서 배급하여 사용되었습니다.

春秋 . 戰國時代를 거치면서 엄격한 用鼎制度는 파괴되었으나 그 상징적 의미는 여전하였습니다.

漢代以後에는 동정의 규모가 작아지고 또한 陶鼎으로 대체되어 부장됩니다.

우리나라에서 삼국시대 이전의 동정이 출토된 것은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낙랑지역과 김해의 양동, 울산 하대유적이 있을 뿐이고 대체로 중국에서 제작된 것입니다.

이것은 동정이 중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상징하고 있음을 말합니다.

그런데 하대유적에서 출토된 이 銅鼎은

전한 말기의 양식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 크기나 형태에서는 중국에서도 유래가 없는 독특한 것이어서

우리나라에서 제작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리고 제작과 부장에는 약 200~300년의 시간차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 동정의 제작과 입수 과정, 부장 의미는 당시의 대외 관계와 정치적 성격 파악에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할 것입니다.

 

이 그릇은 1992년 울산 하대유적에서 발굴된 것으로서

이와 유사한 것이 김해 양동리고분, 평양의 낙랑유적 등에서 10여 점 정도 출토되었습니다.

이 동정(銅鼎)들은 중국 황허강 중류지역에서 발견된 한대(漢代)의 정과도 유사합니다.

특히 양동리에서 출토된 정에 새겨진 금문(金文)에 의하면 서한(西漢)의 수도인 장안에서 정이 제작되어 낙랑군을 거쳐

한반도 남부지방으로 유입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 夏나라 禹王이 九州의 금속을 모아 만든 9개의 솥을 王位 傳承의 寶器로 삼은 후 국가, 왕위, 帝業의 뜻이 되었음.< => 鼎

 

 원삼국시대/울산 하대 23호塚/높이 49.8 cm/ 부산대학교 所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