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독을 널로 사용한 선사 및 고대의 무덤의 일종입니다.
옹관묘는 청동기시대에서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발견되는 무덤으로 청동기시대에는 토기')>민무늬토기를 직립 매설하고 판석으로 덮고 있습니다. 이 옹관묘는 초기철기시대에 와서 전형적인 양식이 완성됩니다. 즉 모든 형태와 온갖 양식을 갖춰 마침내 전형적인 양식이 완성되고 있습니다. 옹관묘는 삼국시대와서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특히, 영산강유역의 독무덤은 특별히 제작된 대형독, 곧 옹관전용(甕棺專用)으로 제작된 옹관 수기를 매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영산강유역의 전통적인 특수 독무덤집단의 묘제입니다.
여기서 독무덤은 고총고분(高塚古墳)으로, 귀족들의 가족묘(家族墓)가 최고도로 발전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신촌리(新村里) 9호 독무덤에 금동관(金銅冠)·금동리(金銅履)·봉황환두대도(鳳凰環頭大刀), 각종 식옥류(飾玉類)가 부장된 것으로 볼 때, 이 지역의 독무덤은 찬란한 귀족문화로 화려하게 발전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통일신라시대·고려시대독무덤이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도 지속되었는지 확정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그러나 이 시기에 독무덤은 쇠퇴기에 들면서도 그 명맥은 이어간 것으로 추정됩니다. 조선시대에는 다시 생활용기인 옹기를 이용한 유아용 무덤으로서 독무덤으로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독널무덤은 재래식 묘제를 계승한 전통 묘제의 하나로 단지나 항아리를 사용한 무덤 영식입니다. 백제권역에서는 서울, 공주, 부여, 영산강 유역 등 전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금강 유역에서는 이음독널이 널리 쓰였는데, 주요 유적으로는 공주 남산리 . 부여 저석리 . 논산 표정리 . 부여 염창리 등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부여 염창리 돋무덤은 큰 항아리에 반구형의 토기를 막은 것으로 금동제귀걸이와 유리구슬이 출토되었습니다.
독널 (甕棺)
韓國 - 百濟 / 夫餘 鹽倉里 出土 / 길이 108cm / 國立夫餘博物館所藏
위의 돌널무덤에서 출토된 부장품
금동제귀걸이 . 유리구슬(金銅製耳飾 . 琉璃玉) 길이(右)4.4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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