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朝鮮時代)/옛 인물초상화

필자 미상 조말생 초상(筆者未詳 趙末生 肖像)

鄕香 2012. 1. 16. 14:25

조말생(趙末生, 1370 ~ 1447)은 조선초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근초(謹初)· 평중(平仲), 호는 사곡(社谷)·화산(華山).

서운관정(書雲觀正) 조의(趙誼)의 아들입니다.

1401년(태종1)생원으로 증광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요물고부사(料物庫副使)에 임용되었고, 감찰,정언,헌납을 거쳐 이조정랑에 승진되었고, 1403년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 왔습니다. 1407년 문과중시(文科重試)에 2등으로 급제하여 전농시부정(典農寺副正)이 되었으며 다시 장령,직제학을 역임하였습니다. 그 뒤 1411년에 판선공감사(判繕工監事)가 되었다가 곧 승정원동부대언(承政院同副代言)에 잠시 배명되었으며, 승진하여 지신사(知申事) 등을 역임하고, 1418년에는 이조참판에 이르러 가정대부(嘉靖大夫)가 되었고, 동년 8월에 형조판서, 병조판서를 차례로 역임하였습니다. 1426년 (세종8)에 장죄(贓罪)로 연좌되어 외직으로 좌천되었습니다.

1432년에는 동지중추원사가 되고 다음 해에 함길도 도관찰사에 임명되었으나 병으로 그만두었습니다.

1434년, 9월 지중추원사가 되고, 1435년 판중추원사가 되었으며, 대제학을 지내다가 1438년에 다시 판중추원사가 되어 다음해에 궤장(几杖)을 하사받았습니다. 1442년 숭록대부(崇祿大夫)가 되었으며, 1446년에 영중추원사가 되었으나 이듬해(1447년)에 타계하였으며, 문강(文剛) 시호를 받았습니다. 초장지는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청량2동 207번지에 홍릉수목원 자리 였으나 고종의 늘을 인근에 쓰는 바람에 양주군 구리면 수석동(지금의 구리시 수석동, 강동구 암사동 한강 건너편 강안)으로 옮겼습니다.

 

필자 미상 전 조말생 초상(筆者未詳傳趙末生肖像)

조선 시대 / 絹本彩色178.3×104.3cm / 국립중앙박물관 所藏 (德5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