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위(申緯, 1769-1847). 조선 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
자하 신위 선생이 행서로 쓴 "여뀌 꽃[蓼花]" 싯구이다. 신위 선생의 글씨는 필획에 살이 풍부하여 화려한 느낌을 준다. 시, 글씨, 그림에 모두 뛰어났던 조선시대의 손꼽히는 시서화 삼절(詩書畵 三絶)이었던 선생은 추사 김정희 선생과 오랜 친교 관계에 있었으면서도, 자신의 글씨 풍을 계속 유지하였다.
자하 신위 선생이 쓴 옛 시(紫霞 申緯 筆 蓼花詩)
조선시대/국립중앙박물관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한수(漢叟), 호는 자하(紫霞). 1799년(정조 23)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갔는데, 10여 년 간 한직(閑職)에 머물거나 파직·복직을 되풀이하는 등 기복이 많았습니다. 그후 이조참판·병조참판을 지냈으며, 당시 국내외의 저명한 예술가·학자와 폭넓은 교유를 했습니다. 1812년(순조 12) 중국에 가서 옹방강(翁方綱)을 비롯한 그곳의 학자들을 만나고 돌아온 이후 그 전에 쓴 자신의 시들을 다 태워버렸습니다.
시에 있어서는 우리나라 시인과 그 작품을 7언절구의 형식으로 논평한 일종의 논시시(論詩詩) 〈동인논시절구 東人論詩絶句〉, 시조를 한역한 〈소악부 小樂府〉, 그리고 판소리 연행을 한시화한 〈관극절구 觀劇絶句〉 등의 작품이 유명합니다.
이외에도 중국 신운설(神韻說)의 대표적인 인물인 왕사정(王士禎)의 〈추류시 秋柳詩〉를 본떠 지은〈후추류시 後秋柳詩〉, 신분제도·화폐개혁 등 현실문제를 다룬 〈잡서 雜書〉 등이 있습니다. 그의 시는 전(前)시대에 활약했던 이서구(李書九) 등의 시풍을 계승하면서 한말 4대가인 강위·황현·이건창·김택영 등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림에 있어서는 묵죽(墨竹)에 특히 능하여 이정·유덕장과 함께 조선시대 3대 묵죽화가로 꼽힙니다.
그의 대나무 그림은 강세황에게 큰 영향을 받았는데, 단아한 기품과 우아한 아름다움이 특징입니다.
그는 남종화의 기법을 이어받아 추사파 화가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방대도 訪戴圖〉·〈묵죽도 墨竹圖〉가 있습니다.
그의 화풍은 아들 명준(命準)과 명연(命衍)에게 이어졌고, 그의 서풍(書風)은 기름지고 윤기 있는 청나라의 새로운 풍조를 받아들여
한국의 습기(習氣)와 속기(俗氣)에서 벗어났다고 평해집니다.
문집으로 시 4,000여 수를 수록한 〈경수당집 警修堂集〉(16책 85권)이 전합니다.
당시(唐詩) 가운데 화의(畵意)가 풍부한 작품만을 뽑아 편집한 〈당시화의 唐詩畵意〉가 있으며, 그밖에 김택영이 중국에서 간행한
〈신자하시집 申紫霞詩集〉(2책)이 있습니다.
19세기 전반에 시(詩)·서(書)·화(畵)의 3절(三絶)로 유명했던 문인이며, 시에 있어서는 김택영이 조선 제일의 대가라고 칭할 만큼 당대를 대표하는 시인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자하 신위 선생이 쓴 글씨(紫霞 申緯 筆 書)
조선시대 / (橫卷) 絹本墨書31.8×205cm / 국립중앙박물관(德3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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