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朝鮮時代)/조선 회화(繪畵)

전 현동자 안견 필 적벽도(傳 玄洞子安堅筆赤壁圖)

鄕香 2008. 1. 24. 23:57

 

 

안견의 본관은 지곡(), 자는 가도()·득수(), 호는 현동자()·주경()입니다.

화원 출신으로 세종 때 도화원() 종6품인 선화()에서 체아직인 정4품 호군()으로 승진하였습니다.

이는 조선시대 화원은 최고 종6품까지 올라가는 규정을 깬 최초의 인물로 파격적인 일입니다. 안견은 안평대군()을 가까이

섬기면서 그가 소장한 고화()들을 섭렵하며 화풍을 익혔고, 1447년(세종 29) 그를 위하여 〈몽유도원도()〉

(덴리대학 중앙도서관 소장)를 그리고 이듬해 〈대소가의장도()〉를 그렸습니다.

 

이 《赤壁圖》는 安堅의 작품으로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안견作으로 오랫동안 전해 내려운 名作으로서 그의 다른 小品들과  비교해 보아도 별로 무리가 없습니다. 이 그림의 소재는 蘇東坡의 〈赤壁賦>에서 취한 것으로 여겨지며 필력과 그림 솜씨가 매우 특이합니다.

山峯의 윤곽, 뫼 위의 苔點같은 雜木, 그리고 나무 그리는 방식이 蟹爪法을 반영한 北宋의 郭熙系流의 院体山水畵 양식 기법을 따랐습니다. 中宗때의 권신 김안로가 「龍泉談寂記」에서 지적했듯이 그 시대의 北宋院体의 산수화법을 이만큼 해낼 사람은 안견을 제하고는 좀처럼 비정할 상대가 없습니다.

全景에서 나오는 舟上의 인물들은 박진감이 넘쳐 있으며, 또한 인물만을 粉彩해서 큰 화면에 구심점을 이루고 있습니다. 遠景 . 近景으로 나타나는 奇峯과 험준한 암벽들은 그윽하게 감겨 드는9幽玄)분위기를 돋우었으며 요소에 靑綠設彩가 곁들여 있습니다. 北宋 때의 화가 곽희()의 화풍을 바탕으로 여러 화가의 장점을 절충, 많은 명작을 남긴 그는 특히 산수화에 뛰어났고, 초상화·사군자·의장도 등에도 능했으며, 그의 화풍은 일본무로마치시대() 수묵산수화 발전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백호 윤전(白湖 尹鐫 1617~1680)의 「書權生所藏安堅山水圖後」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 權聖中이 자기집에 世傳해 오던 山水圖 8폭을 나에게 보여 주었다. 그 것은 안견의 그림이었다. 안견은 墨畵로 이름을 떨쳤던 화가로서 유독 산수화에 뛰어났었다고 한다. 나는 안견의 사람됨에 대해서 일찌기 들은 바가 있다. 世祖의 癸酉靖亂을 당할 무렵이었다. 안평대군께서는 公子의 몸으로 스스로 文華를 크게 아끼고 翰墨을 좋아하여 당대의 名流들과 널리 교유하였다. 안견도 그림 그리는 재간 때문에 안평의 부름을 받았다. 안평대군은 안견의 뛰어난 畵技를 몹시 아끼어 잠시도 자기의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하였다. 안견의 당시의 사태가 위급함을 알고 스스로 안평대군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했으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안평대군이 북경의 어느 저자에서 좋은 '龍煤墨丸을 얻게되자 급히 안견을 불러 그 먹으로 그림을 그리게 하였다. 안평대군이 내전에 들었다가 다시 돌아와 보니 그 용매먹이 간곳이 없었다. 노발한 안평대군이 종들을 문초하니 협의가 안견에게로 떨어졌다. 안견이 겁에 질려 변명하려는 찰라 용매묵이 그의 소매자락에서 떨어졌다. 격노한 안평은 그를 엄히 꾸짖어 내쫓았다.  안견은 그때부터 숨어지내며 안평에게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 소문은 세상에 떠들썩하게 퍼졌다. 그후 얼마 안 되어 마침내 안평대군은 世祖로부터 큰 환난을 당하였고 안평에게 드나들던 사람들은 모두 연루되어 죽음을 당했으나 안견만은 그 화를 면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제야 안견의 사람됨을 기이하게여기게 되었다. 아! 德을 품고 있으면서도 행실을 그르쳐 勢利와 禍剡을 면하였다. 이것은 古人도 행하기 어려운 것인데 안견이 능히행하였구나. 이것은 어찌 事勢의 낌새를 알아차리고 괴이하게 행동한 선비가 아니겠는가, 아마도 안견은 그림에만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높은 식견과 멀리 내다보는 안목과 깊은 뜻이 있었다. 특히 그것으로써 이 세상에노닐고 그 예술에 몸을 담았던 것이었는지 가히 알기 어렵다. 」

 

 안견작품으로 남아있는 것은 〈몽유도원도〉가 유일하며, 전칭작품()으로 〈사시팔경도()〉가

국립중앙박물관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외에 기록으로 전해지는 그의 작품으로는〈비해당25세진〉〈이사마산수도()〉

소상팔경도()〉〈팔준도(駿)〉〈임강완월도(臨江玩月圖)> <묵죽도()>등이 있습니다.

 

 이 그림은 안견의 그림으로 전해오는 그림입니다.

 

 

전 안견필적벽도(傳 安堅筆赤壁圖)

조선시대15世紀中葉/(絹本淡彩) 長161.5cm, 幅 102.3cm./ 國立中央博物館所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