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朝鮮時代)/조선 회화(繪畵)

학포 이상좌 필 불화첩/불화첩발문 (學圃李上左佛畵帖/跋文)

鄕香 2008. 1. 20. 19:30

 

 

이상좌 불화첩으로 전해지고 있는 이 화첩에는 앞뒤의 전서체 발문(跋文)과 함께 5점의 나한상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 두 그림에는 번호가 명기되어 있어서 원래는 16나한상을 그렸던 것이라고 추정되기도 합니다.

 왼쪽 나한상에는 늙은 스님이 유희좌(遊戱坐)에 가까운 자세로 암반 위에 앉아 있는데,

왼손에는 석장(錫杖)을 들고, 오른손으로는 맹수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습니다.

먹만을 사용한 선묘화로서,

옅은 선은 아래의 배접된 종이에서 비쳐 보이고 있어서 전체적으로 산만하고 복잡한 인상을 받게 됩니다.

 오른쪽 나한상에는 왼손에 발(鉢)을 든 젊은 나한이 묘사되었는데

'十五'라는 숫자가 쓰여져 있어서 제15나한인 아지타 존자를 묘사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나한의 둥글면서도 갸름한 얼굴 윤곽, 양미간을 찡그린 날카로운 눈매는 가는 선으로 조심스레 그려진 반면에,

가사에 싸인 건장한 몸체 부분은

왼쪽 나한상보다 훨씬 번잡스럽게 끊어지고 서로 겹치거나 교차하는 필선으로 묘사되었습니다.

 비록 초본이라고는 하지만 부정확한 묘사력과 일관성이 부족한 필선,

그리고 완결되지 못한 형태 등은 이화첩을 이상좌의 필로 보는 데 주저하게 만듭니다.

 

 

이상좌불화첩 (李上左佛畵帖) 

조선 시대 / 紙本水墨各50.6cm / 31.0cm / 호암미술관 所藏

 

 

 

발문은

글씨도 잘 쓰고 난초와 대나무를 잘 그린 선조의 손자 낭선군(朗善君) 이우(李 吳 : 1637∼1693)가 구해 온

이상좌의 불화 초본에, 허목(許穆: 1595-1682)이 전서(篆書)로 쓴 것입니다.

허목은 발문에서 "이상좌의 인물화는 신묘하다.

신(神)의 묘경(妙竟)에 들어가지 않으면 그릴 수 없다"고 하는 등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이상좌불화첩발문 (李上左佛畵帖跋文)

국적/시대 : 한국 조선

재질 : 지본묵서

크기 : 41.7cm / 24.1cm

소장기관 : 호암미술관

 

 

자는 공우(公祐), 호는 학포(學圃). 어숙권(魚叔權)의 〈패관잡기 稗官雜記〉에 의하면 본래 어느 사대부가의 가노(家奴)였으나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뛰어나 중종의 특명으로 도화서의 화원이 되었다고 한다. 아들 흥효(興孝)도 화원으로 수문장(守門將)을 지냈다. 그의 가계(家系)에 대해서는 그와 이배련(李陪連)을 동일인으로 보는 견해와 다른 인물로 보는 2가지 설이 있다. 그와 이배련이 같은 인물이라면 숭효(崇孝)도 그의 아들이 되며 정(楨)은 그의 손자가 된다. 인물화에 특히 뛰어나서 1545년(인종 1) 석경(石璟)과 함께 중종어진을 추사(追寫)했으며, 1546년에는 공신들의 초상을 제작하고 원종공신(原從功臣)의 훈명을 받았다. 1543년 예조에서 한대(漢代)의 유향(劉向)이 편찬한 〈열녀전〉을 국역할 때 삽화를 맡아 그리기도 했다. 원래 그의 진품으로 확인되는 작품은 1점도 없으며, 현존하는 국내외의 유작들은 모두 전칭작(傳稱作)이다. 이들 작품은 대부분 남송(南宋)에서 명대(明代) 절파(浙派)로 이어지는 화풍과 유관함을 보이는, 인물 중심으로 구성된 산수화와 도석인물화들이다. 그중에서도 〈송하보월도 松下步月圖〉(국립중앙박물관)는 지금까지 전하는 조선 초기 작품 가운데 남송 마원(馬遠)의 화풍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보여준다. 보물로 지정된 나한도(羅漢圖) 〈불화첩 佛畵帖〉(보물 제593호, 호암미술관 소장)이 그의 유작으로 전하고 있으나 진위문제에서 논란의 여지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