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서성(海東書聖), 신필(神筆), 묘필(妙筆)로 불린 김생( 金生 711성덕왕10년~791 원성왕7년)은〈삼국사기〉에 따르면 한미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어려서부터 서도에 정진해 예서·행서·초서에 따를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조선 말기의 문신 '성대중'은 "그 획이 마치 삼만 근의 활을 당겨서 한 발에 가히 수 많은 군사를 쓰러뜨릴 것만 같다"라고 감탄을 하였습니다. 김생은 안동 문필산(文筆山), 경주 경일봉(擎日峰) 석굴(石窟) 같은 곳에서 글씨를 힘써 공부하고, 충주 북진애(北津崖)에 있는 절에서 중이 되어 두타행(頭陀行)을 닦았습니다. 고려 사신 홍관(洪灌)이 송(宋)의 변경(汴京)에 체류할 때 김생의 글씨를 가져다 보이자 송의 한림대조(翰林待詔) 양구(楊球)와 이혁(李革)이 왕희지(王羲之)에 비길 만한 천하의 명필이라고 격찬했다고 하며 그뒤부터 중국 사신들은 김생의 필적을 매우 귀하게 여겨 얻어갔다고 기록되었습니다. 〈동국여지승람 東國輿地勝覽〉이나 〈미수기언 眉叟記言〉에 문필산·김생굴(金生窟)·김생사(金生寺) 등 그와 관련된 풍수유적이 전합니다.
고려의 서예는 전하는 것이 드물지만 비석 묘지명과 같은 금석 자료들은 오늘날까지 남아 있어 이를 통해 부분적으로 나마 고려 글씨의 경향과 변화 과정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고려는 서예문화에 있어서 중국 북송과 교류가 깊었으며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글씨에서는 북송의 米불(1051-1107) . 蘇軾(1036-1101) . 황정견黃庭堅(1045-1105) 등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구양서 해서체 및 왕희지의 행서체는 비석을 중심으로 계속 유행하였습니다. 고려의 승려 탄연坦然과 같은 최고의 서예가를 배출하였으며, 중국 원의 조맹부(趙孟 兆+頁)의 송설체는 고려 후기의 새로운 서예문화로 자리 잡았습니다.
태자사 낭공대사 비석 탑본(太子寺郎空大師碑榻本)
고려(954년)/김생(金生글씨집자)/비석높이218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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