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주 천전리 암각화는 크게 세 시대에 걸쳐 제작된 것입니다.
왼쪽에는 대곡리 암각화와 같은 구상적인 형상이 새겨져 있고 중앙과 오른쪽 상단에는 기하학적 문양이 주류를 이루며
하단은 線긋기로 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각각 선사 시대 후기. 청동기 시대. 古新羅 시대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왼쪽 일부분에는 대곡리 암각화처럼 구상적인 형상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나타난 동물들이 교미를 하거나 서로 애무하는 장면은
'관계'에 대한 표현의 반영으로 대곡리 암각화에 바다짐승과 들짐승의 상징적인 관계가 표현되었다면 여기에는 암수가 쌍으로 엮어내는
생리적인 관계가 그려져 있으며 이 관계는 아직 사회적인 연계성이 그려져 있는 것이 아니라 본능에 근거를 두고 생산적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중앙과 오른쪽 상단에는 동심원무늬.마름모무늬.가지무늬.우렁무늬 등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기하학적 형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런 조형상의 변화는 천둥 번개 돌풍 같은 자연적 기후로 인한 재해로 인한 생활 및 신앙의 변화에 따른 영향으로 생각됩니다.
수렵어로생활은 점차 농경생활로 바뀌면서 이러한 생활의 변화는 미술에 있어서도 획기적인 변화를 주었습니다.
농경의 증가와 더불어 자연 현상에 대한 의존이 커지면서 지상의 자연물에 대한 주술적 신앙이 떨어지고 대신 전혀 실체를 알 수 없는
막연한 존재에 대한 종교심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표현 방식에도 영향을 미쳐 구체적인 자연물의 형상과 거리를 둔 기하학적 형상이 등장하기에 이른 것으로 봅니다.
이 암각화의 기하학적 문양은 현대의 추상회화에서와 같이 무의식의 내면세계를 표현한 것이 아니라
해.바람.물.사람의 생식기 등 생명의 근원과 본질을 표출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표현기법은 먼저 쪼으기를 한 다음에 다시 그 부분을 갈아 깔끔히 정리 하였습니다.
이것은 쪼으기 기법에서 한단계 진전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이 유적은 청동기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합니다.
맨 아래에는 신라시대에 새겨진 명문과 선각표현이 보입니다.
내용은 말을 탄 인물. 배.용으로 보이는 동물.말.사람.새 등이며 이처럼 날카롭게 그은 선묘는 신라의 토기에서 보이는
양식과 같은 양식이며 처음에 쓰여진 명문은 525년 (법흥왕12년)에 쓰여진 것이고 추가된 명문은 539년(법흥왕26)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仁)
탁본을 많이하여 바위에 검은 먹물 흔적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신라시대 화랑들이 남겨놓은 흔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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