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朝鮮時代)/조선 회화(繪畵)

소당 이재관 필 송하인물도(小塘李在寬筆松下人物圖)

鄕香 2009. 1. 14. 17:44

 

 

소당(小塘) 이재관(李在寬, 1783-1838)은 조선 후기 직업화가로서 나라에 중요한 그림과 관련된 행사가 있을 때 화원으로 차출되어 활동하기도 하였습니다. 직업화가로 활동하면서도 이인상(李麟祥, 1710-1760), 윤제홍(尹濟弘, 1764-?) 등 문인화가들의 영향을 부분적으로 수용하여 고아한 문인화의 세계를 추구하기도 한 화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그림<소나무 아래의 인물(松下人物圖)>은 국립중앙박물관에 <파초 아래의 신선(芭蕉仙人圖)>, <글을 쓰는 미인(美人寫書圖)>,
<피리부는 미인(美人吹笛圖)>, <여성 협객(女俠圖)>, <신선(仙人圖)>과 함께 총 여섯 점이 전해지는데, 크기와 화풍의 유사한 것으로 보아 하나의 세트로 제작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중 <소나무 아래의 인물>은 그의 전형적인 화풍을 보여주는 대표작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이 그림은 화면 오른편에 적혀 있는 ″속세의 사람들을 백안시하네(白眼看他世人)″라는 화제(畵題)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 당나라 왕유(王維, 699-759)의 시를 소재로 다룬 그림입니다.  속세를 떠난 은일자의 심회를 읊은 시의 내용에 따라 베로 만든 건(巾)을 쓴 처사가 시동과 더불어 소나무 아래의 바위에 걸터앉아 있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전체적인 구도와 소나무의 묘사는 이인상(李麟祥)의 화풍을 따랐으며,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산 모습이나 담묵의 윤곽선에 가해진 투명한 먹점의 효과는 윤제홍(尹濟弘)의 영향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림 좌측 상단에는 다음과 같은 시문이 있습니다.

″소나무는 깡마른 듯하고, 돌은 완고하며 사람은 거만한 풍채를 그린 다음에야 무릎을 안고 길게 노래하며 한 세상을 냉소한 듯한 안목을 지닐 수 있다. 소당은 참으로 화신(畵神)이다. 나에게 이것을 그리라 하면 솔은 노송이요, 돌은 괴석이요, 사람은 허황하게 그릴 따름이니 이는 겉만 그린 것이리라

(松是骨 石是頑骨 人是傲骨 然後方帶得抱膝長嘯 眼冷一世之意 小塘 其眞畵神者乎. 使我作此 松老石怪人詭而已 此寫形者也).″ 이는 그의 절친한 벗인 조희룡의 글로 이재관이 그림의 깊은 의미를 그려냈음을 밝히며 그의 실력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입니다.

 

이외에 <파초 아래 신선>은 당나라의 서예가 회소(懷素, 725-785)가 종이를 살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하여 파초 잎에 시를 썼다는 일화를 그린 것이고 나머지 네 작품은 여자 신선과 협객을 소재로 한 것입니다.

가냘픈 체격과 달걀모양의 얼굴, 팔자형의 눈썹, 가느다란 눈을 한 여인들의 모습은 중국 명청대 유행했던 여인들 그림과도 유사합니다.

은 조선 후기 직업화가로서 나라에 중요한 그림과 관련된 행사가 있을 때 화원으로 차출되어 활동하기도 하였습니다. 직업화가로 활동하면서도

이인상(李麟祥, 1710-1760), 윤제홍(尹濟弘, 1764-?) 등 문인화가들의 영향을 부분적으로 수용하여 고아한 문인화의 세계를 추구하기도 한 화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송하인물도(松下人物圖)

朝鮮時代 (李在寬, 1783-1838) /재질 : 紙本淡彩 /크기 : 139.4cm ×66.7cm /소장기관 : 國立中央博物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