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이 엄마의 편지」
박물관재직당시 살뜰하고 뭉클한 사랑의 감동을 안겨주던 친필의 이 편지를 직접 접하고 전시한 적이 있어 그때의 감성으로 이에 올려본다.
조선 중엽(1586년 음력 6월1일) 어느 부부의 애틋한 사랑의 편지가 오랜 세월동안 남편의 품에 고이 안겨 땅속에 묻혔다가 약 400여년이란 지난한 세월이 지나서 다시 후대의 仁愛에 심금을 울렸다. 이러한 사랑을 지금의 세태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 것만 같은 선비 이응태 부인의 순애보적 그리움이 절절한 편지의 내용을 이에 실어본다.
또한 병으로 자리보전한 남편이 쾌차하길 염원하는 지극정성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손수 남편의 미투리(신발)를 엮었다. 특히 조선시대 양반가 여인들은 머리카락을 貞操만큼이나 소중히 여겼는데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병으로 누워 있는 남편의 미투리(짚신)를 엮어 만든 것은 자신의 육신과 정성을 혼신으로 바쳐 섬길 것이니 병마를 떨쳐내고 쾌차하시라는 간절한 소망의 결정체가 아니겠는가 싶다.
이 편지가 발견된 안동시 정상동은 당시 택지개발로 산재되어 있는 묘지의 연고자에게 이장을 통보하고 순차적으로 발굴 이전을 하던 중 개발구역내 한 선산에서 문중의 후손이 행여 모를 조상의 묘를 찾아 헤매던 중 무연고 묘지를 발견하여 문중에 알렸다. 이후 안동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발굴팀은 이 무연고 무덤의 주인을 찾기위한 조사과정에서 고성 이씨의 묘임을 알아냈고 그 문중에 이를 알렸다.
1998년 4월25일 이윽고 무연고 묘지의 이장을 위해 발굴에 들어갔다. 안동대학교 측도 만일의 있을 유물발견에 대비하여 함께 발굴조사에 나섰다. 그런데 이 무덤에서 머리카락으로 엮은 미투리 한 켤레 등 75점의 유물과 함께 물이 찬 목관 안 시신 가슴 위치에서 무덤 주인의 부인이 쓴 편지가 발견되었고 그 외에도 兄과 친지들의 편지도 함께 발견됨으로써 무덤의 피장자는 이응태(李應台1556~1586)라는 사람으로 밝혀졌으며 키(身長)가 약 185m로 추정되는 거구巨軀 였다.
고성 이씨의 세보에 의하면 이응태의 할머니(祖母)는 일선 문씨(一善 文氏)문계창(文繼昌)의 따님으로 알 수 있었 듯이 그외 가족들도 그와 같았으나 이응태 부인은 본명이나 기록은 전혀 남아 있지 않았으며, 부인이 묻힌 묘 또한 정확한 위치가 알려지지 않았다. 이응태 장례 이후 6년 뒤에 일어난 임진왜란(1592)으로 인해 그 부인이나 아들이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으리라는 짐작을 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무연고 무덤의 주인은 고성 이씨이며 이름은 응태이고 이 편지를 쓴 이응태 부인의 이름은 안타깝게도 이응태 무덤에 부장된 유물과 여러 서간書簡이나 족보에서도 알 수가 없었다. 원이 엄마라는 것 이외에는 · · ·,
〈원이 엄마 편지 원문〉 워늬 아바님ᄭᅴ 샹ᄇᆡᆨ 병슐 뉴월 초ᄒᆞᄅᆞᆫ날 지븨셔 자내 샹해 날ᄃᆞ려 닐오ᄃᆡ 둘히 머리 셰도록 사다가 ᄒᆞᆷᄭᅴ 죽쟈 ᄒᆞ시더니 엇디ᄒᆞ야 나ᄅᆞᆯ 두고 자내 몬져 가시ᄂᆞᆫ 날ᄒᆞ고 ᄌᆞ식ᄒᆞ며 뉘긔 걸ᄒᆞ야 엇디ᄒᆞ야 살라 ᄒᆞ야 다 더디고 자내 몬져 가시ᄂᆞᆫ고 자내 날 향ᄒᆡ ᄆᆞᄋᆞ믈 엇디 가지며 나ᄂᆞᆫ 자내 향ᄒᆡ ᄆᆞᄋᆞ믈 엇디 가지던고 ᄆᆡ양 자내ᄃᆞ려 내 닐오ᄃᆡ ᄒᆞᆫᄃᆡ 누어셔 이보소 ᄂᆞᆷ도 우리ᄀᆞ티 서ᄅᆞ 에엿ᄲᅵ 녀겨 ᄉᆞ랑ᄒᆞ리 ᄂᆞᆷ도 우리 ᄀᆞᄐᆞᆫ가 ᄒᆞ야 자내ᄃᆞ려 니ᄅᆞ더니 엇디 그런 이ᄅᆞᆯ ᄉᆡᆼ각디 아녀 나ᄅᆞᆯ ᄇᆞ리고 몬져 가시ᄂᆞᆫ고 자내 여ᄒᆡ고 아ᄆᆞ려 내 살 셰 업ᄉᆞ니 수이 자내 ᄒᆞᆫᄃᆡ 가고져 ᄒᆞ니 날 ᄃᆞ려가소 자내 향ᄒᆡ ᄆᆞᄋᆞ믈 ᄎᆞᄉᆡᆼ 니ᄌᆞᆯ 줄리 업ᄉᆞ니 아ᄆᆞ려 셜운 ᄠᅳ디 ᄀᆞ이 업ᄉᆞ니 이 내 안ᄒᆞᆯ 어ᄃᆡ다가 두고 ᄌᆞ식 ᄃᆞ리고 자내ᄅᆞᆯ 그려 살려뇨 ᄒᆞ노이다 이 내 유무 보시고 내 ᄭᅮ메 ᄌᆞ셰 와 니ᄅᆞ소 내 ᄭᅮ메 이 보신 말 ᄌᆞ셰 듣고져 ᄒᆞ야 이리 서 년뇌 ᄌᆞ셰 보시고 날ᄃᆞ려 니ᄅᆞ소 자내 내 ᄇᆡᆫ ᄌᆞ식 나거든 보고 사롤 일 ᄒᆞ고 그리 가시ᄃᆡ ᄇᆡᆫ ᄌᆞ식 나거든 누ᄅᆞᆯ 아바 ᄒᆞ라 ᄒᆞ시ᄂᆞᆫ고 아ᄆᆞ려 ᄒᆞᆫᄃᆞᆯ 내 안 ᄀᆞᄐᆞᆯ가 이런 텬디 가슨 ᄒᆞᆫ이리 〈윗부분〉 하ᄂᆞᆯ 아래 ᄯᅩ 이실가 자내ᄂᆞᆫ ᄒᆞᆫ갓 그리 가 겨실 ᄲᅮ거니와 아ᄆᆞ려 ᄒᆞᆫᄃᆞᆯ 내 안 ᄀᆞ티 셜울가 그지그지 ᄀᆞ이업서 다 몯 서 대강만 뎍뇌 이 유무 ᄌᆞ셰 보시고 내 ᄭᅮ메 ᄌᆞ셰와 뵈고 ᄌᆞ셰 니르소 나ᄂᆞᆫ ᄭᅮ믈 자내 보려 믿고 인뇌이다 몰래 뵈쇼셔 〈첫부분〉 하 그지그지 업서 이만 젹뇌이다 |
〈현대 한글〉 원이 아버님께 올림 병술년 유월 초하룻날 집에서 자네 항상 나더러 이르되 둘이 머리 세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 어찌하여 나를 두고 자네 먼저 가시는가. 나하고 자식하고는 누구에게 구걸하여 어찌하여 살라 하고 다 던지고 자네 먼저 가시는가. 자네 날 향한 마음을 어찌 가졌으며 나는 자네 향한 마음을 어찌 가졌던가. 매양 자네더러 한데 누워서 내가 이르되 여보, 남들도 우리같이 서로 어여삐 여겨 사랑할까? 남들도 우리 같은가? 하여 자네더러 이르더니 어찌 그런 일을 생각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 자네 여의고 아무래도 나는 살 수가 없으니 얼른 자네한테 가고자 하니 날 데려가소. 자네 향한 마음을 이 생에 잊을 줄이 없으니 어떻게 해도 서러운 뜻이 그지없으니 내 이 마음을 어디다가 두고 자식 데리고 자네를 그리며 살까 하나이다. 내 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자세히 와 일러 주소. 내 꿈에 이를 보고 하실 말 자세히 듣고자 하여 이렇게 써넣네. 자세히 보시고 나더러 일러 주소. 자네 내 밴 자식이 나거든 보고 사뢸 것 있다며 그리 가시면 밴 자식이 나거든 누구를 아빠 하라 하시는가. 아무리 한들 내 마음이나 같을까. 이런 천지 같은 한이 〈윗부분〉 하늘 아래 또 있을까. 자네는 한갓 그곳에 가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한들 내 맘같이 서러울까. 그지그지 가이없어 다 못 쓰고 대강만 적으니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자세히 와 보이시고 자세히 일러 주소. 나는 꿈에서 자네를 보리라 믿고 있나이다. 몰래 모습을 보이소서. 〈첫부분〉 하도 그지그지 없어 이만 적나이다. |
【편지에서 이응태 부인이 임신 중이던 아이의 이름 "워늬(원이)가 등장한다. 고성이씨세보 1권 참판공파 962쪽에 이응태의 무녀독남으로 이성회(李誠會)"가 등재되어 있는데, 원이가 동일 인물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원이'는 정황상 胎名인 듯하다.
편지에서, 아내가 남편 이응태를 '자내(자네)'라고 부르는데, 이 시기의 순우리말에는 '자내;가 상대를 동등하게 대할 뿐만 아니라 높이는 데도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대 국어에서도 '자네'는 친구처럼 동등한 관계에서 쓰일 수 있지만 도 이상 상대를 높이는 표현은 아니며, 지금은 주로 아랫사람에게 쓰인다.
'상해'(항상, 늘)'에서 '상'은 常이며, 'ᄎᆞᄉᆡᆼ'은 차생(此生) 측 '이승'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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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피봉에 '워니 아바님께 샹백'이라 적고, 편지의 말미에는 '지븨셔'와 함께 발신일을 '병슐 뉴월 초하룬날'이라 적고 있어 이와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편지에는 젊은 나이에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애절한 사랑, 홀로 아이들과 살아가야 할 일이 걱정인 아내의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16세기 안동 지역의 방언이 반영되어 있고 남편을 '자네'로 호칭하고 있어 일찍부터 주목받아온 자료이다. 이 편지는 남편의 시신 위에 덮혀 있던 것인데, 관棺에서는 편지 이외에도 부장품으로 아내가 남편을 위해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삼은 미투리가 함께 발견되었다. 애절한 내용의 편지와 함께 부장품인 미투리는 부부 간의 영원한 사랑을 주제로 세계적인 잡지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에도 소개된 바 있다.
이 유물은 국가 보물로 지정되었다.
〈편지 작성 시기와 국어학적 의의〉
이응태(李應台1556-1586)묘의 편지는 순천 김씨 묘에서 출토된 편지와 비슷한 시기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 중기 사대부가의 한글 사용에 대한 내용을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이다. 이 편지가 쓰여진 시기는 대략 1586년으로 추정되며 발신자인 이응태 처妻에 대한 기록은 상세히 밝혀진 바가 없다. 이 편지는 죽은 남편에 대한 아내의 사랑이 애절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남편에게 보내는 최초의 언간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특히 남편에 대한 2인칭이 '자네', '워니 아바님', '이보소' 등 여러 호칭이 나타나는데 2인칭 호칭어를 '아바님'으로 쓰고 경상도 방어方語인 '이보소'를 사용한 최초의 언간으로서 국어학적 연구 가치가 큰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