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伽耶)/대가야(大伽耶)

盟主國 大伽耶 王族의 墓域

鄕香 2024. 11. 20. 19:38

高靈은 後期 伽耶聯盟의 盟主國이였던 大伽耶 本據地로 삼았던 곳이다. 

大伽耶는 伽耶諸國중 유력한 국가를 칭한 용어로 한때는 前期 伽耶의 맹주국이었던 金冠國을 大伽耶라고 부른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 금관국이 세력을 상실한 뒤인 5세기 後半代이후 멸망시까지는 낙동강 西岸을 거점으로 하여 이 고령의 가야세력이 대가야로 부상하였던 것이다. 

고령의 대가야를 맹주국으로 한 大伽耶聯盟의 세력판도는 高靈系土器가 출토되는 陜川 · 咸陽 · 南原  등 智異山주변은 물론 晋州 · 泗川 · 固城 등 蟾津江流域에까지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서부 경남의 대부분 지역을 포함하는 넓은 세력판도이나 연맹의 각 소국들은 독자적 세력기반을 갖고 있었다. 

이렇게 막강한 대가야도 백제가 榮山江以南地域에 대한에 대한 영토확장을 꾀함에 따라 도전을 받게 된다.

백제는 蟾津江河流地域을 공격하여 513년 이들 지역을 확보한다. 이에 대가야는 522년 신라와 婚姻同盟을 맺게 되나 이도 곧 깨지고 결국 562년 신라에 의해 멸망되면서 伽耶諸國의 歷史는 그 終末을 보게 된다.

지금의 高靈에는 池山洞, 本館洞, 中化洞, 良田洞, 從岩洞, 快賓洞 등 곳곳에 당시의 墳墓遺蹟이 산포한다. 

이 중에서도 고령 중심부에 있는 主山의 池山洞遺蹟은 바로 당시 대가야의 王이나 王族들의 墓域으로 생각된다. 대표적인 例가 지산동 44·45호분이다. 이들 高塚古墳은 하나의 封土내에 主·副室이 좌우로 배치된 竪穴式 石室墳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많은 小形石槨들이 배치되어 있다. 이들 소형석곽은 殉葬墓로 생각되어 당시 지배계급들의 막강한 힘을 엿볼 수 있다. 

그들의 신분을 상징하는 유물로는 耳飾 등 각종 裝身具類와 45호분 출토의 金銅製冠形裝飾, 三葉環頭對刀 등이 있다. 또한 32號墳에서는 彎曲縱長板胄 · 札甲 · 衝角附胄 橫長板釘結板甲 · 肩甲 · 上膊甲 등 2式의 甲胄와 함께 특이한 형식의 金銅冠이 출토되어 주목을 끌며, 32NE-1호분에서도 單鳳의 銀象嵌唐草文環頭大刀가 출토되었다.   

 

〈高靈 池山東遺蹟 全景〉

 

〈고령 지산동 32 - 35호분 / 高靈 池山洞 32 · 35號墳 全景〉

 

〈金銅冠〉 前面

고령 지산동 32호분 / 高靈 池山洞 32號墳

 

〈金銅冠〉 後面

고령 지산동 32호분 / 高靈 池山洞 32號墳

 

〈金銅製冠裝飾〉 前面

고령 지산동 45호분 / 高靈 池山洞 45號墳

 

〈單鳳文環頭大刀〉 

고령 지산동 32NE-1호분 / 高靈 池山洞 32 NE-1號墳

 

 〈單鳳文環頭大刀〉 (위 대도 손잡이 세부 / 上 大刀把手部細部〉  

 

〈삼엽문환두대도 / 三葉文環頭大刀〉

고령 지산동 45호분 / 高靈 池山洞 45號墳

 

〈삼엽문환두소도 / 三葉文環頭小刀〉

고령 지산동 45호분 / 高靈 池山洞 45號墳

 

〈소환두대도 / 素環頭大刀〉

고령 지산동 32호분 / 高靈 池山洞 32號墳

 

고령 지산동 32호분 전경 / 高靈 池山洞 32號墳 全景

 

〈횡장판정결판갑 · 충각부주 · 견갑 / 橫長板釘結板甲 · 衝角附胄 · 肩甲〉 

고령 지산동 32호분 / 高靈 池山洞 32號墳

 

〈금제귀걸이 각종 / 金製耳飾 各種〉 

고령 지산동 각 유구

 

〈성시구 / 盛矢具〉

고령 지산동 34SE-3호분 / 高靈 池山洞 34SE-3 號墳

 

〈목걸이 / 頸飾〉

고령 지산동 각 유구(高靈 池山洞 各 遺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