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옛길

「경기옛길 경흥 제 6길( 만세교길)」

鄕香 2022. 1. 7. 01:18

경기옛길 경흥길 제6 만세교길

만세교는 신경준 선생의 道路考를 비롯하여 '대동지지' , '증보문헌비고' 등에서 주요 경유지로 기록되어 있으며, 태조 이성계가 함흥을 오갈 때 이 지역 다리를 지났다고하여 만세다리 혹은 만세교라 전하고 있습니다. 

만세교길은 신북면행정복지센터에서 출발하여 제6-1길(만세교길)과 제6-2길(독곡아트밸리길)의 중간 합류지점인 만세교까지의 길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제6-1길은 하천을 따라 평지를 걷는 11.2km 거리의 무난한 코스이고, 6-2길은 아트밸리를 경유하여 천주산 능선을 종주하는 난이도가 어려운 코스입니다. 따라서 6-1길은 여유롭게 하천을 끼고 철새들의 群舞도 보며 유유자적 사색을 즐길 수 있는 길이며, 6-2길은 좀 긴(17km) 산행을 하신다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2021년12월22일(수요일) 경의중앙선 구리역에서 전철을 타고 회기역에서 1호선 전철로 환승해서 의정부역에서 내려 의정부역 인근 흥선지하도입구 정류장에서 138번(의정부 -경복대입구)을 타고 신북면행정복지센터에서 하차(11시 08분) 사진 몇 장 담고 11시11분 제6-1길 만세교길로 들어섭니다. 

 

 

신북면사무소(행정복지센터)는 한창 리모델링 공사 중입니다. 표지석 옆 좌측 길가에 꾸며놓은 크리스마스트리가 이채롭습니다. 신북면행정복지센터 좌측으로 이동합니다. 

 

 

첫 사거리입니다. 6-1길과 6-2길의 갈림길입니다. 횡단보도를 건너 바로 좌측으로 들어서면 6-1길이요 다시 우측 횡단보도를 건너가면 6-2 길로 들어섭니다. 

 

 

순번대로 먼저  6-1길로 들어섭니다.

 

 

보이는 두 길 중 우측 아랫길로 들어섭니다.

 

 

데크계단으로 들어섭니다. 

 

 

명덕천 둑길에 설치된 데크산책길로 갑니다.

 

 

데크 산책로에서 명덕천 건너편을 바라본 풍경입니다.

 

 

데크산책로가 끝나고 둑기로 들어서자 바로 하천을 가로지른 징검다리를 건너게 됩니다.

 

 

둑길에서 바라본 건너가야할 징검다리의 모습입니다.

 

 

내 가는 발자국에 놀랐을까 사진기를 들이미는 내 정체에 놀랐을가 고요한 냇가에 평화롭던 백로 무리가 날아 오릅니다.

 

 

잘 다듬어 놓은 징검다리를 건너 가려니 내 18번 노래 하나 떠올라 부르며 건너가네. 비록 외나무다리는 아니지만.. 

 

"복사꽃 능금꽃이 피는 내 고향 만나면 즐거웠던 외나무다리 그리운 내 사랑아 지금은 어디

새파란 가슴 속에 간직한 꿈을 못 잊을 세월 속에 날려 보내리,

어여쁜 눈썹달이 뜨는 내 고향 둘이서 속삭이던 외나무다리 헤여진 그날 밤의 추억은 어디

싸늘한 별빛 속에 숨은 그 님을 외로운 세월 속에 어이 잊으리-"

 

 

바라본 하천 저 편에 방금 날아오른 백로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돌계단으로 오르는 줄 알았는데 돌계단 앞에 세워진 이정표가 우측 마른 풀섶을 가리킵니다. 풀섶에 들어서서 경기옛길에서 설치한 짧은 징검다리를 건너 둑으로 오릅니다. 

 

 

작고 좁은 도랑에 경기옛길에서 징검다리를 놓아 보행자의 편의를 돕고 있습니다. 모두 5개 인가? 그런데 경기옛길과 뺏지 문양에 이끌려 2개를 담았습니다.

 

 

징검다리를 건너 둑길로 오릅니다. 

 

 

넓지도 좁지도 번들거리지도 않는 하천둑길에 마른 잡초의 잎들이 부드러운 포근함을 안겨 주는 길을 하천에 흐르는 물소리 반주 삼아 노래를 부르며 간다.

 

" 어머님의 손을 놓고 떠나올 때엔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

가랑잎이 휘날리는 산마루턱을 넘어 오던 그날 밤이 그리웁구나!

맨드라미 피고 지고 몇 해 이런가 물방아간 뒷전에서 맺은 사랑아

어이 해서 못 잊느냐 망향초 신세 비 내리던 고모령을 언제 넘느냐. " 

 

 

"내 발길 오늘도 경기옛길 걷노라 저 시냇물 졸졸 희망을 풀어 흘리건만

세속은 어찌하여 못 잊는가! 파란만장 인생사 품어 안은 바람찬 만세교"

 

 

노래 한 곡 부르고 나니 들길 같던 풀섶제방 콘크리트길로 변했네.

 

 

가로놓인 길을 가로질러 다시 둑길로 들어섭니다.

 

 

가로놓인 도로 우측은 신평교입니다.

 

 

도로를 가로질러 다시 들어선 하천둑길.

 

 

저만치 하천둑길은 단절되고 다리 건너 우측 하천둑길로 들어섭니다.

 

 

우측 한바위교로 들어섭니다.

 

 

한바위교 앞 입니다. 만세교길의 종착점 영중농협까지 8.3km 입니다.

 

 

한바위교 중간에서 걸어가야할 방향을 바라본 정경입니다.

 

 

방죽이자 농로겠지만. 아무튼 거처가야 할 길입니다. 

 

 

저만치 공장으로 이어진 다리와 스포츠센터 건물이 보입니다.

 

 

좌측은 북만세교, 우측 길로 들어섭니다. 

 

 

뒤에 있는 다리 이름을 확인해 보니 '북만세교'입니다. 

 

 

길 저편 보이는 야산 능선이 6-2 독곡아트밸리길이 있을까? 

 

 

조만치 가로놓인 길과 만나는 삼거리 

 

 

영종농협까지는 7km지점,

 

 

43번 국도로 들어서서 신호등 앞 횡단보도를 건너 SK주유소 쪽으로 갑니다.

 

 

주유소 옆 만세교1리 표석.

 

 

다음 신호들 삼거리까지 약1km 정도 국도로 걸어갑니다.

 

 

저만치 만세교삼거리가 보입니다. 

 

《만세교》

 

《만세교/萬歲橋》

만세교는 북관대로로 43번국도 포천시 신북면과 영중면의 경계인 명덕천을 가로지른 다리로서 일제 강점기에  3.1운동 당시 포천 사람들이 이 다리 위에서 만세를 외쳤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전합니다. 또한 이 다리는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서 함흥을 오갈 때 이 다리를 건넜다고 합니다.

 

1950년 6월25일 북한괴뢰군이 기습 남침에 맞서 국군 제9연대 2대대가 탱크를 앞세운 북괴뢰군의 남하를  막기 위해 도하를 저지하기 위해 혼신을 바쳐 4시간 동안 싸우던 국가 수호의 사적지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을 안고 있는 만세교의 마을 뒤편 야산 정상에는 옹주의 태를 봉안했던 태실인 태봉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 태실의 주인은 영조와 영빈 이씨에서 태어난 따님으로 英祖14년(1738년) 陰1월19일에 태어난 和緩翁主입니다. 태를 담았던 태항아리는 도굴되어 사라지고 원형의 석대와 석대를 덮고 있는 개석은 그 모습 그대로 남아 향토 유적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습니다. 

 

 

만세교 중간에서 바라본 남쪽 풍경,

 

 

만세교 건너 첫 로터리,  43번 국도를 가로지른 횡단보도를 건너 좌측으로 갑니다.

 

 

횡단보도 건너 우측으로 

 

 

 

저 상징성은 뭘까?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뫼비우스 띠로 엮어 연결함을 뜻하는 것일까? 아님, 어떤 세 개의 근원을 묶은 것일까?  

 

 

마주보이는 우측 굴다리로 들어섭니다.

 

 

쾌척한 공원길로 가려나! 내심 즐거워집니다.

 

 

육교 밑 인도로 들어섭니다.

 

 

육교 밑을 지나자마자 대로(43번국도)를 피해 좌측 마을길로 들어섭니다. 

 

 

길은 걸어온 방향으로 회전하듯 굽어지고..

 

 

가로놓인 길 우측으로 들어섭니다. 

 

 

마을로 들어섭니다. 

 

 

마을을 들어서서 50m 정도 걸었을가! 우측 길로 들어섭니다.

  

 

다시 43번 국도를 만나 좌측 버스정류장 쪽으로 들어섭니다. 돌이켜 보건대 경기옛길보행자 안전을 위해 인도가 없는 길을 피해서 마을길로 우회를 한 것이겠다 싶습니다. 

 

 

신호등 앞 횡단보도를 이용해서 길을 건너서 43번국도를 따라 50m 정도 조심해서 가야합니다. 

 

 

횡단보도를 건너 43번 국도를 따라갑니다.

 

 

위험스럽지만, 조금 걸어가면 우측으로 안전하게 우회할 수 있는 마을길이 나옵니다.

 

 

위험한 국도변을 피해서 金珠一里 마을을 거쳐가는 우회路입니다. 

 

 

길가 우측으로 미륵박물관으로 들어서는 길이 있고 박물관 건물이 보입니다. 

 

 

미륵박물관 내 야외에 모셔진 큰 불상이 보입니다.

 

 

줌으로 담아본 탑을 머리위에 올린 미륵불상입니다. 

 

 

마을길이지만, 옛날처럼 아늑하고 정감이 흐르고고 정서적인 마을은 이제 어디에서도 볼 수가 없습니다. 

어느새 조만치 洞口가 보입니다.  

 

 

동구 밖에서 다시 만난 43번 국도 건너에 보이는 다리로 가야합니다.

 

 

43번 국도를 건너와서야 이곳이 백로섬(白鷺洲)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백로주 비석 앞에서 건너온 길을 돌아본 정경입니다.

 

 

《거새리 마을(白鷺洲 村)》

백로주는 영평8경의 하나로 포천천 한 가운데 섬바위를 중심으로 여러 개의 바위들이 주변의 소나무, 백사장, 백로 등과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빗어내고 있습니다. 李白이 지은 시 구절 중 '一水中分白鷺洲'와 유사한 지명이라고 생각한 관찰사 동강 선생이 300년 전에 서돌바위에 '白鷺洲'라고 크게 새겨 놓았는데, 훼손되어 가는 글씨를 안타깝게 여긴 마을 사람들이 이를 탁본하여 동네 입구에 세워 놓은 것입니다. 

 

 

백로주 비석 옆 만세교길 스탬프 함.

 

 

〈영평8경의 제7경 백로주〉

지금은 작은 마을의 이름으로만 남게된 포천의 옛 명칭 '영평'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포천의 아름다운 경치 8개를 이르는 "영평8경"만은 이 이름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포천시 영중면 거사리 한내천 하류에 위치하고 있는 백로주는 영평8경 중에 7번째 이름을 올린 명경입니다. 

 

 

근처 만세교와 금주산에서 흘러들어온 물이 합쳐지면서 이루는 절경은 이제 포천의 대표적인 휴양지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지금은 소나무 숲과 붕어와 메기 등이 많이 잡히는 낚시터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축구장, 배구장, 족구장, 보트장 같은 부대시설들도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 산정호수, 금주산, 관음산 같은 대표적인 관광명소도 있어서 이곳을 찾는 이들의 발길은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옛 경기감찰사가 이곳의 아름다움에 반해 "三山半洛靑天外 二水中分白鷺洲"라는 시를 바위에 새겨놓은 것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백로주는 예로부터 백로들이 노니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백로주 위에 바위산은 마치 백로가 물속에 서서 사방을 바라보는 모양을 보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백로주를 가니르면 절로 시 한 수를 읊을 수 있을런지도 모릅니다. (위 경기옛길 안내글)

 

 

 

다리 중간에서 바라본 백로주 풍경,

 

 

바위는 옛 모습일진데 물은 탁하다. 과연 이 물에 물고기가 있을지..

 

 

거사리 마을로 들어섭니다.

 

 

밀집해 있는 비닐하우스 무엇을 재배할까?

 

 

멋지고 우아한 나무의 가지와 자태에 절로 마음을 내줬다.

 

 

갈림길 우측 금화봉2길로 들어섭니다.

 

 

굽어지고 휘어진 시골길가에 고즈너기 그리움이 뻗어 간다. 

 

 

곡선도 아름다운 이 길 저 편에 어떤 정경이 숨었을까?

 

 

영평천을 굽어보는 산허리에 아름다운 집들이 도란도란 정겹다. 

 

 

집집마다 우편함 예쁘기도 하지

 

 

우측 영평천으로 발길을 이끕니다.

 

 

곧은길을 가노라면 절로 노래가 흥얼거려집니다.

 

 

"끝없는 벌판 멀리 지평선에 노을이 물들어오면

외로운 저 목동의 가슴속에 아련한 그리움 솟네 

뭉게구름 저 편 산 너머로 기러기 때 나르고

양 때를 몰고 오는 언덕길에 초승달 빛을 뿌리면

구슬픈 피리소리 노래되어 쓸쓸히 메아리 치네." 

 

"저녁 한 때 목장풍경"은 전우 작사 김기웅 작곡으로 위키리(이한필)가 1964년 부른 노래입니다. 

 

 

매 인가 솔개인가 하늘 높은 곳에서 한마리가 빙빙 맴을 도니 평화롭던 냇가에 오리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날아오르거나 허둥지둥 마른 풀 섶으로 숨어들거나 갈피를 못 잡고 허둥거립니다. 

 

 

요리조리 길 따라 눈길 닿은 곳에 아담한 집을 보노라니 또 흘러나오는 노래,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 장미꽃 넝쿨 우거진 그런 집을 지워요

메아리소리 해맑은 오솔길 따라 산새들 노래 즐거운 옹달샘 터에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 포근한 사랑 엮어갈 그런 집을 지어요."

 

 

오가는 이도 없는 길을 걷노라니 옛 생각이 떠오른다. 이만한 길이면 소달구지 한번 쯤 지나갈 길이 아니던가. 그러고 보니 이중섭의 그림 중 "〈길 떠나는 가족〉"이 떠오릅니다.  부인 이남덕여사와 세 아이를 소달구지에 태우고 이중섭 자신이 소를 끌고 가는 모습을 그린 그림입니다. 만날 수 없는 가족이 하도 그리워 그렸던 그 눈물겨운 심정이 가슴을 애립니다.  

 

 

《길 떠나는 가족》

1954년, 29.5 × 64.5cm, 종이에 유채,  個人所藏. "오늘 엄마, 태성이, 태현이가 소달구지를 타고.. 아빠는 앞쪽에서 소를 끌면서 따스한 남쪽나라로 가는 그림을 그렸어요."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그려 보낸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그려 넣은 삽화와 똑같은 구도로 그린 유화 '길 떠나는 가족' 입니다. 李仲燮이 아내 이남덕여사와 아들 태성이와 태현이를 소달구지에 태우고 앞에서 소를 이끌고 있습니다. 생이별한 가족과 다시 만나 행복하게 살고 싶은 바람을 경쾌한 움직임과 색채로 표현하였습니다.

 

달갑지 않은 콘크리트길과 아스팔트길을 걸었으니 좀 쉬면서 요기 좀 해야겠는데 마침 다리 밑에 이정표와 경기옛길 벤치가 보이니 좀 쉬었다 가야겠지요. 

 

 

빛깔도 우아한 의자에 앉아 행복한 기분으로 간단한 간식을 들고 다시 길 나섭니다.

 

 

아, 이제 종착지 영중농협까지 거리도 얼마 남지 않았네요.

 

 

포천천을 가로지른 거사리의 '거사교'를 건너갑니다.

 

 

거사교 중간에서 내려다본 물은 염색물처럼 검은 폐수가 흐르고 소똥 냄새와 온갖 악취가 진동을 합니다. 아, 맑은 물이 흐르고 우리의 토종 물고기들이 번식해야할 시골 냇가에 흐르는 개울물이 이렇게 썩은 물이 되어 흐르니 근처의 지하수도 오염이 되었을 것은 불을 보듯 뻔 한 일이겠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마음 아픈 일입니다. 마땅히 관리해야할 관청이나 폐수를 마구 버리는 사람들이나 그 처사가 너무 미워라!

 

 

거사교를 건너자마자 좌측 포천천둑길로 들어섭니다.

 

 

들어서기 전에 바라본 포천천둑길의 정경입니다. 

 

 

촤측에 포천천을 우측에 들판을 끼고 휘돌아가는 길 자만치 우뚝 솟은 산, 그 이름 "푸목산"이랍니다.

 

 

이제 얼추 다 온 것 아닐 가 싶은 영중농협, 저 마을 안에 있으리 -

 

 

낙귀정址가 뻐꾹천교와 포천천이 합쳐지는 곳에 있다면 이 이야기판은 이곳 뻐꾹천교 앞에도 세웠어야 하겠습니다. 그랬다면 이 주변을 자세히 둘러보고 낙귀정지를 보았을 텐데.. 아쉬워 다시 찾아와야 하겠습니다. ㅠㅠ

 

 

다리이름이 뻐꾹천교인 것으로 보아 작은 이 지천 이름이 뻐꾹천이겠지요. 아무튼 뻐꾹천을 따라갑니다. 

 

 

마을로 이어진 43번국도를 또 만났습니다. 뻐꾹천에 가로놓인 좌측 다리로 들어섭니다.

 

 

다리 건너 시가지, 영중면 행정복지센터소재지이겠지요.

 

 

다리를 건너서 뒤돌아보니 건너온 다리의 이름이 '뻐꾹1교'입니다. 이외에도 뻐꾹다리가 몇 되나봅니다.

 

 

시가지 중앙에 위치한 영중면 농협 건물입니다. 드디어 제 6-1 만세교길의 종착지입니다. 고맙습니다.

 

 

버스정류장을 등진 제7 영평8경길의 시작점의 안내판이 보입니다. 현재 시각은 오후 3시07분입니다. 

오전 11시07분, 신북면행정복지센터를 출발하였으므로 총 4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귀가는 사진에 보이는 영중농협 앞 버스정류장에서 포천시외버스터미널가는 30번 버스를 타고 포천터미널 앞에서 138번으로 환승하고 의정부흥선지하도입구정류장 하차 으정부역으로 이동, 1호선 전철 승차.

 

고맙습니다. 

경기옛길 제6 만세교길, 2021년12월11일(토요일) - 鄕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