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금속활자/高麗金屬活字
<개성에서 출토된 고려 때의 것으로 보이는 금속활자 "전嫥"(예측) >
현재까지 고려 활자로 알려진 것은 출토경위가 분명치 않은 것으로 남북한이 각각 1점씩 소장하고 있는 희귀한 유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1점(복山+復)와 북한 평양의 중앙역사박물관 1점(이마 전顚), 모두 2점이 있습니다. 남북역사학자협의회 (최광식)는 11월30일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통하여 남북이 공동으로 2015년 6월부터 11월 말까지 발굴조사를 실시한 제 7차 개성 만월대 발굴현장에서 고려 때 것으로 추정되는 금속활자 1점이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출토된 글자는 '嫥'자로 추측되나 오른 하단부의 글자가 뚜렷하지 않아 '寸'인지 '方'인지 정밀 분석이 이뤄져야 명확히 알 수 있겠다고,합니다. 이 활자의 크기는 가로 1.36cm, 세로1.3cm, 높이 0.6cm, 글자의 면을 제외한 몸체두께 0.16cm, 뒷면에는 세로지름 0.93cm, 가로지름 1.08cm의 홈이 파여 있습니다. 이는 고려금속활자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이번 발굴된 금속활자는 그 경위와 출토지가 명확한 것이어서 관심되는 바가 큽니다. 또한 이 금속활자는 유네스코에 등재된 고려 때 금속활자로 찍은 直指나 사찰에서 만든 증도가자보다 월등하게 세밀해서 국가에서 만든 가장 정교하고 수준 높은 활자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활자본인 '직지'보다도 앞선 최고의 활자입니다. 만월대가 1361년 홍건적에 의해 소실된 때를 기준으로 해도 1377년에 인쇄된 직지보다 최소한 16년이나 앞서 만든 것입니다. 세계의 수많은 도서관 중에 1450년 무렵 금속활자로 출판한 최초의 성경 42행.. 성서 180부 중 현재 남아 있는 48부의 독일 구텐베르크를 소장했는지 못했는지에 따라서 명문이 좌우된다는 구텐베르크보다도 89년이나 앞서 만든 세계 최고의 활자를 만들었다는 문화민족임을 또 한 번 일깨워주는 세계적인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2015년 12월1일자로 발간된 조선일보에 의하면 이날 개성에서 고려 금속활자를 확인한 이제정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은 "이번 출토된 금속활자는 국립중앙박물관과 평양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고려금속활자와는 글씨체는 다르지만 홈이 있는 것으로 볼 때 형태면에서 비슷하다, 조선시대 금속활자에는 홈이 파여 있는 형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협의회 관계자는 기존의 고려금속활자 2점과 비교할 때 글씨체가 더욱 정교하고, 활자의 모양도 정사각형에 가까울 정도로 반듯하며 주조 기술 수준이 가장 높은 것으로 판단 된다고 말했다. 정확한 제작시기는 알 수 없지만 1361 이전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금속활자는 만월대 서부 건축群 최남단 지역 신봉문 터에서 출토되었다고 한다. 또한 이번 발굴에서 19동의 건물지가 확인 되었고, 명문 기와, 청자, 용두 등 3,500여점이 출토되었다고한다. 이번 제7차 남북공동 발굴지 개성 만월대는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이 919년 개성 송악산 기슭에 건설한 궁궐의 터로 고려 말 홍건적의 침입으로 소실되었고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2007년부터 남북 역사학자들이 공동으로 발굴 조사를 시작해 올해로 제7차 발굴조사가 진행됐다. 최광식 위원장은 " 북측과 시기, 서체, 성분분석 등 추가 연구가 많이 필요하다 먹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추후에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법이라든지 과학적인 조사를 남북이 공동으로 하기로 논의 했다."고 했다. <사진 캡처 조선일보 / 글 허윤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