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백담사-영시암-봉정암-오세암-영시암-백담사(2015년10월6일)
<봉정암~오세암~영시암~백담사> 구간
봉정암12시30분~백담사 5시47분 (10 km-5시간17분 소요).
백담사에서 대청봉으로 오르려면 오세암을 거쳐 봉정암에서 대청봉으로 오르는 길과 영시암을 지나 봉정암을 거쳐 대청봉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오세암을 거쳐야할 일이 없다면 구태여 오세암 방면으로 갈 까닭이 없다. 경치도 그렇고 경사가 심하다. 영시암에서 계곡을 끼고 만수폭포를 거쳐 쌍용폭포를 보고 봉정암으로 오르는 길이 오르기도 원만하고 경관도 좋아 힘든 줄 모르게 오를 수가 있다.
<봉정암 석가사리탑> (보물 제 1832호)
(석가사리탑에서 내려다본 봉정암)
석가사리탑에서 바라본 용아장성 풍경,
용아장성줄기는 백담사에서 봉정암까지 뻗어 있다. 백담사에서 수렴동계곡으로 봉정암에 오른 뒤 용아장성 능선을 타고 백담사로 하산할 수 있겠다.
망부석처럼 서있는 입석의 모습이 마치 12支神 중 鼠(子)의 형태와 흡사하다.
설악산 암질은 화강석퇴적사암인데 잘 갈라지고 쪼개지고 부서져 리지산행은 각별히 조심해야 하겠다.
봉정암에서 오세암으로 가는 길은 가파른 내리막이다. 바위의 수평절리가 마치 구들장을 쌓아놓은 듯하다
바위들이 수직절리가 심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아 위협을 느낀다.
능선의 바위를 보고 한 생각 떠올린다. 조선시대 산골 아낙네들이 특산물 등 봇짐을 이고 재 너머 장터로 나들이 가는 듯하다.
나뭇가지 사이로 본 입석머리를 보니 여러 형상이 보인다. 김초시 두상, 땅강아지 머리, 犬머리, 개구리 입 등이 보인다.
입석을 줌으로 당겨보니 개구리 입보다는 장돌뱅이 넉살스런 모습 같다.
급경사진 곳은 얼추 다 내려온 것 같은데 무릎이 저리기 시작이다. 여기까지는 아프지 않았는데.. 이제 10km 이상 산행은 무리인가보다. 작년 만 해도 장수대-1408봉-귀때기청봉-한계령공원을 넘을 때도 거뜬했던 다리가 이제 10kmj를 넘기니 무릎이 따라주질 못한다.
이제 설악산에서 내가 넘어 체험해 보고 싶은 곳은 공룡능선과 천화대 암벽등반이 남았는데, 천화대 암벽등반은 무릎이 이 모양이니 접어야할 것이다. 그러나 공룡능선은 내년에 기회가 된다면 물러서진 않을 것이다.
발길은 이미 다른 길로 들어섰는데 가는 길목마다 지그시 바라보는 용아장성, 무릎은 시큰거리는데, 아 - 어쩌란 말이냐?
봉정암 석가사리탑에서 오세암으로 가는 길은 몹시 경사지고 미끄럽다. 그래서 일까 오가는 이 없고 한적하다.
어렵게 가파른 곳을 다 내려오니 곱게 물든 단풍이 아늑함으로 긴장을 풀어준다.
나뭇가지 사이로 험난한 천화대의 봉우리들이 아스라히 보인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러기에 저리던 무릎도 통증을 잊고 고운 단풍에 속아 넘어간다.
얼마나 높은지 가늠조차 안 되는 산허리를 휘돌아가는 길은 울긋불긋 옷단장이 한창이다.
오르고 내리는 고갯길 마다 서있는 이정표의 거리 숫자는 찔끔거린다. 통증이 심한 내 무릎에 야박스럽기만 하다.
봉정암에서부터 얼마나 힘들게 내려오고 올라왔는데 고작 500m를 덜어내고 있다.
설악의 나무도 바위도 어느 것 하나 기묘스럽지 않은 것은 없다.
고개마루턱마다 서 있는 이정표가 오늘따라 반갑지 않은 것은 더욱 힘든 내리막길을 제시하고 있음이다.
오색으로 물든 나무도 단정한 길도 어찌 아니 곱겠는가!
마등령, 봉정암, 오세암으로 갈리는 삼거리. 백담사에서 마등령을 타려면 오세암 방향으로 오르는 것이 지름길이겠다.
<오세암 사적비>
한국지명유래집에 의하면 신라 643년 제27대 선덕여왕12년에 자장율사가 암자를 짓고 관음암이라고 하였다. 이후 조선 인조21년(1643)에 雪淨이 헐어진 것을 다시 세워 오세암이라 하였고 고종25년(1888)에 백하선사가 다시 중수하였으나 1950년 한국전쟁으로 불에 탔다. 매월당 김시습(金時習)이 조선 시대 단종이 물러나자 충절을 참지 못하고 미친 시인이 되어 강산을 두루 돌아다니다가 이곳에 이르러 오랫동안 머물렀으므로 그의 별호 오재신동(五才神童)을 따서 오세암이라 했다고도 전한다. 또한, 오세암은 신라 시대 전설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기도 한다. 이 전설에 따르면, 매월(每月) 대사가 다섯 살 된 조카를 데리고 와 이곳에 암자를 짓고 지내다가 늦은 겨울에 양식을 구하러 나갔는데 눈이 많이 내려 그 다음 해인 봄이 되어 비로소 돌아왔다고 한다. 그런데 죽은 줄로만 알았던 조카가 살아 이상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얼마 뒤에 흰 옷 입은 젊은 부인이 나타나 아이를 보살피고 파랑새가 되어 날아갔다고 한다. 이후 이 암자는 다섯 살 어린 동자가 득도하였다 하여 오세암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오세암/五歲庵>
지금 오세암은 불사가 한창이다 온 사찰경내를 포클레인이 헤집고 있다. 이 '천진관음적전天眞觀音寂殿'은 寂寥한 듯 보이지만 옆 마당에서는 굉음이 온 산을 뒤집고 있다.
고통은 시간과 거리를 늘리는 재주가 있나보다. 영시암까지 1.5km라지만 구만리로 보인다. 이 무릎의 통증을 안고 언제 저 거리를 갈고..
봉정암에서 오세암을 거쳐 이곳 삼거리까지 오는 길은 나에게는 고난의 길이었다. 백담사에서 봉정암으로 향할 때 지나간 갈림길에 당도하니 마음은 놓이지만, 아픈 무릎으로 다시 백담사로 가야하니 그 거리도 만만치가 않다.
2015년 10월6일 / 봉정암-오세암-영시암-백담사 오후 12시30분~17시47분, (10km, 5시간17분 소요). <鄕香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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