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아차산 보루성(阿且山堡壘城) (3보루-4보루-용마산정상)
아차산5보루에서 3보루로 가는 도중에 있는 전망대입니다. 여기서는 남산과 중곡동, 장안평일대가 조망되며, 용마산정상과 용마산1,2보루가 근접해 있습니다.
<아차산3보루(阿且山3堡壘)>
아차산 줄기의 6개 보루 중 가장 가운데(해발296m)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동남쪽의 아차산2보루와 한강 이남은 물론, 서쪽의 용마산 보루들을 바라볼 수 있는 요충지입니다. 성벽 둘레 약 450m, 내부면적 약 6,500㎡로 추정되어 아차산 일대의 보루 중 가장 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05년에 일부 이루어진 발굴조사에서 배수로와 여러 개의 건물 기단, 성벽 등이 확인되었습니다. 특히 다른 보루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디딜방아의 볼씨로 추정되는 것이 발견되어 아차산3보루가 아차산 일원 병사들의 식량지원 기능을 하였으리라 추측되기도 합니다. 나머지 구역이 마져 조사된다면 아차산의 다른 보루들과 관련하여 이곳이 어떤 기능을 하였는지 좀 더 분명하게 해석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아차산3보루출토(장동호/長胴壺) : 항아리 몸통이 긴 항아리.
아차산3보루출토(양이부호/兩耳附壺) : 두 귀가 달린 항아리. 즉 양면에 손잡이가 달린 항아리.
'아차산3보루'의 안 모습입니다. 아차산 보루 중 가장 큰 보루이지만, 아직 복원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차산3보루에서 동북 방향으로 바라본 모습입니다. 구리시와 하남시 그리고 암사동 일부가 보입니다.
하남시와 강동구 암사동이 그리고 광주산맥의 한 줄기인 검단산이 보입니다.
이 사진은 용마산 정상을 들렸다가 이곳 아차산3보루에 되돌아와서 나무사이로 서울의 남산타워를 보고 역광위치에서 촬영한 사진입니다.
아차산3보루 북단 끝머리입니다.
아차산의 등성이의 요충지로서 중요한 봉우리에 위치하는 아차산 보루들은 현재까지 6개가 확인되었고 이중 5개가 사적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아차산능선 상에 위치하여 남북방향의 교통로와 한강일대를 조망할 수 있는 이들 보루군 중 제3보루는 최대 규모로 단야시설, 저장시설, 방앗간 유구가 확인되어 공방지로 추정되는 곳입니다.
아차산4보루로 가는 길목
아차산보루 중 유일하게 복원되어 있는 제4보루 앞 휴식공간입니다.
<아차산일대 각 보루군 위치 약도>
아차산보루 자주색ⓘ / 용마산보루 남색ⓘ / 망우산보루 청색ⓘ / 홍련봉보루 군청색ⓘ
<아차산4보루(阿且山4堡壘)> 사적455호
고구려는 삼국시대의 전략적 요충지였던 한강유역에 20여 개의 보루를 만들어 남진정책의 전초기지로 활용하였습니다. 아차산일대의 보루는 475년 고구려(장수왕63년)가 한강유역에 진출한 후 551년 신라와 백제에 의해 물러날 때까지 사용되었습니다. 아차산4보루도 토기 형태와 목탄의 연대측정 결과, 5세기 후반부터 6세기 중반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아차산4보루는 크게 성벽과 건물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둘레249m의 성벽은 지형의 경사면을 이용하여 바깥 면을 돌로 쌓음과 동시에 안쪽 경사면을 뒤채움 돌과 흙으로 다져 메우는 식으로 만들었고, 외부 감시와 침입하는 적을 방어하기 유리한 곳에 치(雉)를 설치하였습니다. 독특한 구조의 남쪽 이중치는 출입구로 추정되며, 고구려의 성 쌓기의 전형인 퇴물림(들여쌓기)형식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성벽 안쪽의 건물터는 병사들의 생활에 필요한 온돌과 배수로, 저수조 등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항아리, 명문(銘文)접시, 시루 등의 그릇과 투구, 철갑, 창, 도끼, 화살촉, 등의 무기. 낫, 쇠스랑 등의 농기구, 재갈, 등자와 같은 말갖춤이 발견되었습니다.
아차산4보루는 아차산3보루 다음으로 큰 규모로 아차산 능선의 가장 북단에 해당하는 마지막 봉우리입니다. 건물터, 저수시설과 온돌유구가 확인되었습니다. 아차산4보루는 아차산 보루군 중 유일하게 복원되어 있습니다.
<아차산4보루구조(阿且山4堡壘構造)>
아차산4보루에는 모두 6개의 치가 있는데, 남쪽면에 이중치가 있고, 동쪽면으로 2개의 치가 마련되어 있는데, 남쪽(이중치가 있는 곳)을 상(上), 북쪽을 하(下)로 가정할 때, 동쪽 성벽과 서쪽 성벽에 각각 상하로 1개씩의 보루를 둔 것입니다. 남쪽 이중치를 제외하면, 능선따라 길죽한 보루성 네 귀퉁이에 1개씩 치(雉)를 둔 것입니다.
광장동에서 출발하여 맞이한 제4보루 남단의 모습입니다. 本稚 앞에 독립된 정방형의 또 하나의 치를 만들어 이중으로 치(稚)를 두었습니다.
이중치 사이 단에서 본 본체치(本雉)의 상면 모습입니다.
<건물지(建物址)>
아차산4보루 내에 7개 건물터 중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1호 건물터입니다. 건물터 내부에 온돌 2기와 초석이 남아 있고, 온돌 아궁이 주변에서 명문토기와 철제 투구 등이 출토되어 중요한 인물이 머물렀던 곳으로 추정됩니다.
아차산4보루출토(글씨가 새겨진 그릇/銘文皿)
아차산4보루출토(연통/煙筒)
아차산4보루출토(투구/鐵胄)
아차산4보루출토(쇠스랑/鐵齒擺)
남단 이중치(二重雉)의 형태를 서측에서 본 모습입니다. 보루성에 붙은 치와 독립된 치 사이에 각각 단이 연결될 듯 마련되어 있습니다.
동측에서 본 이중치와 성벽입니다.
서측에서 본 이중치 입니다.
보루성 내 이중치(二重雉)를 본치(本雉)에서 앞의 독립치(獨立雉) 상면을 본 모습입니다.
위에서 본 二重雉 사이 모습입니다. 치(雉)와 치 사이에 단이 마련되어 있는데 그 용도는 알 수 없으나 치에 오르기 용이하도록 설치된 것으로 추정해 봅니다.
<아차산4보루에서 출토된 유물의 일부입니다.>
제4보루성 내의 모습입니다.
아차산4보루에는 모두 6개의 치가 있는데, 남쪽면에 이중치가 있고, 동쪽면으로 2개의 치가 마련되어 있는데, 남쪽(이중치가 있는 곳)을 상(上), 북쪽을 하(下)로 가정할 때, 동쪽 성벽과 서쪽 성벽에 각각 상하로 1개씩의 보루를 둔 것입니다. 남쪽 이중치를 제외하면, 능선따라 길죽한 보루성 네 귀퉁이에 1개씩 치(雉)를 둔 것입니다.
아차산4보루성 동쪽(한강이 보이는 쪽) 성벽과 동편으로 돌출되어 있는 2개의 치 중 남쪽 이중치 쪽에 있는 치입니다. 이 사진은 또 다른 동쪽의 치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동향 성벽 북단에 위치한 치입니다. 이 치(雉)에서는 구리시에서 잠실까지 조망됩니다.
서측(서울이 보이는 쪽) 성벽과 서편으로 돌출되어 있는 2개의 치 중 이중치 편에 있는 서쪽치가 보입니다. 이 사진은 서편의 아래 치에서 위쪽에 있는 치의 측면을 찍은 사진입니다.
서쪽 성벽 하단에 위치한 치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용마산능선 뒤로 아득히 보이는 산은 삼각산(북한산)입니다.
동쪽 상단(이중치쪽)에서 하단의 치를 바라 보고 찍은 사진입니다.
동편 성벽 아래에서 본 아차산4보루성벽과 아래쪽(동쪽 북단)치의 모습입니다.
정면으로 본 동쪽 보루성벽입니다. ↓
측면으로 본 아차산4보루 북쪽 성벽 모습입니다.
앞에 보이는 산이 용마산입니다.
용마산5보루를 향해가는 내림길입니다. 이 계단 끝나는 곳 우측으로 뻗은 가지능선을 따라가면 동사골이란 곳으로 조선조 태종의 후궁(嬪)인 명빈묘가 있습니다. 아차산 줄기에는 조선 3대 임금이신 태종의 후궁의 墓가 2기가 있는데, 하나는 구리시 아천동 동사골의 명빈묘이고, 다른 하나는 구리시 아천동 한다리에 있는 효빈묘입니다.
이 길은 아차산4보루를 내려서면 우측으로 뻗은 지류로 내려가는 샛길인데 1.5km 정도 내려가면 구리시 아천동 산에 위치하는 조선조 제3대 태종의 후궁인 명빈묘로 이어진 길입니다. 명빈묘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도 태종의 또 다른 후궁(嬪)인 효빈묘도 있습니다. 효빈은 태종의 후궁으로 장자인 '경녕군'을 낳았으며, 왕세자 양녕대군과 효령대군이 왕위에 뜻을 두지 않자 효빈은 아들인 경녕군(庶長子)을 세자에 올리려고 충령대군(세종대왕)을 음해하기도 하였습니다.
명빈묘는 서울 광장동에서 구리시를 잇는 국도변에서 150m 정도 산으로 들어간 분지에 있는 동사골이라는 곳에 있습니다. 따라서 광나루에서 구리시행 버스를 타면 워커힐정문 앞 정류장을 지나 2번 째 우미촌 정류장을 지나자마자 동사골 간이정류장에서 하차하면 가깝습니다. 다음 정류장은 아천동이고 그 다음 정류장인 한다리에서 내리면 태종의 또다른 후궁 효빈묘가 있는 골짜기입니다.
명빈묘로 오르는 계단
<조선조 제3대 태종 후궁 명빈묘> 사적 제364호
이 묘의 주인 명빈 김씨(?-1479)에 대해서는 특별한 기록은 없으며 태종의 간택후궁으로 성종 10년(1479)에 별세하였다고만 전합니다.
후궁이기 때문에 담장과 호석이 있는 능으로 조성되지 못하고 민묘처럼 나지막한 봉분에 혼이 나와서 논다는 혼유석과 향로석 그리고 한 쌍의 석인상(얼굴이나 관모의 형태로 보아 내시의 상으로 보임.)이 묘의 좌우로 갖추어져 있습니다.
묘비 전면(前面)에는 『明嬪金氏之墓』 뒷면에는 「楊州○○面成化己亥初七日」이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여기에서 ○○은 '九里'로 추정됩니다. 예전에는 이곳이 九里面이었고 지금은 구리시이니까요. 또한 '성화'는 중국 명나라 황제 憲宗의 연호이며 己亥는 1479년(조선 성종10년)에 해당합니다. 명빈 김씨는 본관은 안동이며 判敦寧府事 安靖公 金九德의 딸로 태종 11년 10월에 간택되어 11월에 정1품 明嬪에 봉했졌고 성종10년(1479년)에 운명하였습니다. 태종부터 성종에 이르는 7대에 걸쳐 內命婦를 지켰습니다. 명빈의 남동생 김오문의 딸은 조선 제5대 임금 문종이 세자시절 첫 번째 세자빈이었던 휘빈 김씨이니 명빈의 친정조카가 됩니다. 휘빈 김씨는 3년만에 폐출되는 비운의 세자빈이 됩니다.
명빈묘를 답사하고 다시 아차산4보루로 되돌아가는 길입니다.
아차산과 용마산 사이에 있는 골짜기 능선으로 아차산4보루에서 약70m 정도 아래에 위치한 곳입니다, 좌측 긴고랑으로 내려가면 서울 광진구 중곡동시장에 이르고, 우측 골짜기로 내려가면 구리시 아천동입니다. 아천동은 한 때 내가 소년기를 보낸 동네이고 지금은 소설가 박완서님이 생전에 거처하던 동네이며 가수 조성모가 살고 있습니다.
용마산5보루(헬기장)로 오르는 길입니다. 계속가면 망우리고개로 이어집니다. 망우리고개로 가는 길에는 서울시립망우공원묘원이 있어 소파 방정환, 주시경선생을 비롯하여 많은 독립운동가, 시인, 소설가 등의 묘가 있어 사색의 길로도 유명합니다.
나무계단이 있는가 하면 울퉁불퉁하고 오목조목 암석으로 이루어진 길인가 하면 향기로운 황토냄새 폴폴 나는 흙길도 있고 조심조심 미끄러운 마사로 된 길도 있습니다.
<아차산장성지(峨嵯山長城址>
이곳은 아차산장성지(峨嵯山長城址)입니다. 지금은 헬기장으로 변모되어 있습니다. 빨간 모자를 쓴 사람 서있는 방향(북쪽) 으로 가면 용마산5보루와 망우산1보루로 이어지며 능선을 타고 계속가면 시립망우공동묘지를 거쳐 망우리고개가 나옵니다. 능선 좌측(서쪽)은 서울 중랑구이고 우측(동쪽)은 경기도 구리시입니다. 아차산 등성이길 동쪽은 경기도요. 서쪽은 서울입니다.
용마산정상으로 가는 길입니다. 이 길은 아차산장성 위에서 바로 좌측에 있습니다. 용마산정상으로 가는 길은 이 헬기장에 오르기 전에 좌측으로 우회하면 빠른 지름길이 있습니다.
<용마산4보루>
용마산4보루는 용마산 정상에서 북동쪽으로 약 260m 떨어진 주 능선상의 돌출된 봉우리(해발 327.3m)에 위치합니다. 평면이 긴 타원형으로 전체둘레 263m, 내부면적 3,075㎡이며 용마산보루 중 가장 큰 규모입니다.
헬기장이 들어서기 전(1960년대 초)에는 보루성의 윤곽이 분명했었는데.. 그 시절에는 우리나라가 수출도 전무한 가난한 나라였기에 역사나 문화는 돌아볼 수 있는 형편은 커녕 당장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지금은 선진국대열에 들어선다는 마당에 문화유적지에 이렇게 헬기장을 만들고 훼손한 것에 우울해집니다. 앞을 좀 더 멀리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용마산4보루터> 지금은 제3헬기장이 자리합니다.
용마산3보루에서 바라본 '아차산4보루' 그 뒤로 암사동과 그 넘어 하남시가 조망됩니다.
3,4,5,6보루성이 분포되어 있는 아차산능선과 그 넘어 천호동(풍납토성)이 조망됩니다. 저 능선을 타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산행에서는 이렇듯 완만하고 암반으로 이루어진 울퉁불퉁 한 곳에서 그 즐거움을 더하기도 합니다.
암반이 끝나면 황토냄새 그 향기로움에 지루한 줄 모르지요.
용마산 정상으로 오르는 계단
용마산 정상은 용마산3보루가 있던 자리입니다.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측량기준점이기도 한 곳입니다.
<용마산 대삼각본점>
이 삼각점은 1910년 우리나라 최초 토지조사사업을 위하여 설치된 "대삼각본점" (최상급 1등삼각점)으로 서울지역에 있는 2점 중 하나로 서울특별시 중랑구 면목동산1-2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이 경과되면서 자연풍화 및 훼손으로 붕괴될 우려가 있어 1994년 7월 서울 정도 600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시설물을 정비하여 현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현재는 『세계측지계』도입에 따른 측량기준점으로 이용되는 역사성 있는 중요시설물입니다.
◎ 표 고 : 348.02m
◎ 「세계측지계 경위도좌표」 ◎ 세계측지계 평면직각좌표(중부원점)
● 위도(B) : 37도 34분 16.16325초 ● 종선(X) : - 47,594.075m
● 경도(C) : 127도 05분 44.67039초 ● 횡선(Y) : + 8,457.97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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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스테인리스강판에 새긴 글>
이 시설물은 세계측지계 도입에 따른 측량의 기준이 되는 "지적삼각점"으로 측지측량에도 공동활용이 가능하도록 설치한 측량기준점이오니 훼손되지 않도록 보존관리에 적극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2008년 11월 서울특별시장
<용마산 정상 대삼각본점 위치에서 바라본 전경>
아차산에서 망우산으로 이어진 산맥입니다. 우측 끝자락 도시는 신내동이고 그 옆 끊어진 듯 보이는 산머리가 망우리고개이며 바로 옆 우측은 구리시이며 덕소가 보입니다. 이 산맥은 동구릉을 거쳐 수락산으로 이어집니다.
용마산 정상에서 바라본 서울시 전경입니다. 역광이라 사진이 맑지를 못하지만, 남산타워도 보이고 북한산도 보이는 군요.
한 여인이 용마산 정상인 측량기준점에 올라서서 용마의 기를 받고 기가 넘쳐 기지개를 하는 모양입니다. 다른 여인이 놀람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다시 아차산4보루를 거쳐서 아차산3보루 전에 좌측 오솔길로 들어서 아차산6보루와 아차산2보루를 답사하고 '암굴사'(대성암)를 거쳐 광장동 워커힐에 위치한 종착점인 '아차산성으로'갑니다.
<용마산2보루>
해를 마주하고 용마산 정상 아래 용마산2보루에서 서북쪽을 본 전경입니다.
북부서울과 중량천 넘어 공릉동 뒤로 수유리 그 뒤로 평풍처럼 둘려진 삼각산의 백운대 인수봉 그리고 도봉산이 이어져 있습니다. 서남쪽은 해가 정면으로 보고 있어 사진 찍기를 단념했지만, 관악산과 서울 장안이 한눈에 조망됩니다.
용마산2보루 출토(큰항아리/大甕) 물레 자국이 있고 검은 마연을 하여 번조하였네요.
용마산2보루 출토 찰갑 (갑옷/札甲)
용마산2보루 출토(요강/虎子) 소변기.
용마산2보루 출토(원통형사족기/圓筒形四足器) : 네발 달린 원통모양의 경질토기(硬質土器)
용마산 정상에서 왔던 길로 되돌아서 '아차산4보루'를 거쳐 아차산3보루 지나 우측 길로 들어서 "아차산6보루"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