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朝鮮時代)/조선 회화(繪畵)

단원 김홍도 필 신선도 8폭 중 제6폭 황초평 (黃初平)

鄕香 2011. 7. 19. 17:58

강세황의 畵評이 매 폭마다 적혀있는 眞彩의 신선도 八幅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제8폭 상부에 "기해 양월 사능(己亥陽月 士能)"의 款記가 있어서 1779년 음력 10월 그의 나이 35세때 그린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강세황은 김홍도에 대하여 '특히 신선과 화조를 잘하여 그것만 가지고도 한 세대를 울리며 후대에까지 전하기에 충분하였다'라고 그의 신선도를 높이 평가하였습니다. 이 신선도는 전체적인 구도를 중요시 한 군선도8곡병(32세때 작품)과 달리 매 폭마다 중심되는 신선을 중심으로 독립적인 화면을 이루고 있습니다. 바탕에 담묵을 깔아서 고아한 분위기를 내고 있는데 담채와 진채, 부분부분에 金彩를 적절하게 구사하여 다양한 색채를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옷자락 수염 등의 호분(胡粉)이 신뜨쇤 맛을 내고 있는데 얼굴에도 호분을 칠하여 살색에 깊이감을 주고 있습니다. 굵은 필획의 옷자락이 두드러지게 보이는데 세부는 세필로 섬세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각 폭에 강세황의 평이 있어서 도상해독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김홍도 강세황 및 당대인들의 신선에 대한 생각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황초평은 중국 진나라(晉代) 사람으로 金華山 石室 중에서 은거하다가 도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가 돌을 보고 소리를 지르면 모두 羊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따라서 그는 막대를 들고 양을 치는 도상으로 등장하는데 이 작품에서는 갖가지 기물을 넣은 고비를 등에 메고 양을 몰고 가는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인 전 김홍도 그림인 <파상군선(波上群仙)>에는 각 신선에 朱墨으로 이름이 적혀 있어서 작품의 년대는 차치하고, 神仙圖像연구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 병풍에는 안시생(安期生)이라 이름이 적힌, 갖가지 기물을 담은 고비를 등에 맨 선인과 양을 모는 황초평이 동시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김홍도가 이 신선도를 그릴 당시에는 이미 황초평과 안기생의 도상요소가 섞인 독특한 황초평 도상의 範本이 성립되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또한 이 그림에서 황초평은 한 쪽 신발을 벗고 있는데 이는 남채화(藍采和)의 도상적 특징이기도 합니다. 표암의 제발은 다음과 같습니다.

 

『 初平叱石爲羊, 儘造化手矣, 士能以筆墨, 幻初平造化手, 殆乎過初平一着, 豹菴評』<초평이 돌을 보고 소리를 질렀더니 양이 되었다 하니 조화수를 다한 것이다. 사능이 필묵으로 초평의 조화수를 홀리게 하니 거의 초평보다 한 수 위라고 할 만하다. 표암평.>

 

 

단원 김홍도 필 신선도 8폭 중 제6폭 황초평 (黃初平) 

朝鮮時代 (1779年金弘道作)/絹本彩色130.7× 57.6cm /國立中央博物館 所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