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 김홍도 필 행려풍속도 제1폭 취중송사 (行旅風俗圖 醉中訟事)
《취중송사(醉中訟事)》
어느 고을원님이 관속을 거느리고 가마에 앉아 순행을 마치고 거나해진 몸으로 귀청행차 도중 마을의 백성이 송사를 올렸습니다. 관아로 귀청길이니 노상에서 즉석 업무를 처리하는 중인데, 갓을 뒤로 뉘어 쓴 원님에 땅바닥에 모로 눕다시피 한 아전의 자태에서 판결을 내리는 원님이나 판결문을 받아 쓰는 아전이나 모두가 취중이니 그 판결 또한 취결이나 아닌지 의문스럽습니다. 또한 이는 술을 즐긴 단원이 연풍현감 시절의 자신의 자화상이나 아닌지.. 그의 스승 표암 강세황도 다음과 같은 제시(題辭)를 달며 같은 생각은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 供級之人, 各執其物, 後先於肩輿前, 太守行色, 甚不草草, 村氓來訴, 形吏題牒, 乘醉呼寫, 能無誤決, 豹菴 評. <공급지인, 각집기물, 후선어견여전, 태수행색, 심불초초, 촌맹래소, 형리제첩, 승취호사, 능무오결. 표암 평.」
"물품을 공급하는 이들이 각기 자기 물건을 들고 가마의 앞뒤에 있으니 태수의 행색은 초라하지 않다. 시골사람이 나서서 진정을 올리고 형리가 판결문을 쓰는데 술취한 가운데 부르고 쓰니 오판이나 없을런지."
김홍도(金弘道, 1745-1816 이후)는 국가가 운영하는 회화 전문기관인 화원(畵院)에서 활동한 화가로 자는 사능(士能), 호는 단원(檀園), 단구(丹邱), 서호(西湖)이며, 연풍 현감을 지냈는데, 산수는 물론 인물, 풍속, 짐승, 꽃과 새 그림 등 모든 소재를 잘 그렸으며,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거장입니다. 먼길을 여행한 작가가 도중에 목격한 몇몇 장면을 이야기 삼아 그린 듯한 이 작품은 여덟 폭의 병풍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제8면에 적힌 관기(款記 : 그림을 그린 뒤 작가의 이름과 함께 그린 장소나 일시, 누구를 위하여 그렸는지를 기록한 것)에 ″무술초하戊戌初夏″라 적혀 있어 1778년 초여름에 그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1면은 판결을 내리고 있는 장면, 제2면에는 주막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있는 나그네와 대장간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제3면은 배를 기다리고 있는 나루터 장면, 또 제4면은 해산물을 머리에 이고 가는 아낙네들, 제5면은 노새를 타고 다리를 건너고 있는 나그네 일행, 제6면은 타작하는 장면, 제7면은 소를 타고 가는 아낙네를 살펴보는 나그네, 제8면에는 목화 따는 아낙네들을 바라보고 있는 나그네를 그리는 등 당시의 평범한 소재들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흔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생활상의 단면을 소재로 하여 내용을 풍부하게 한 점이나 각 인물들의 다양한 자세나 표정을 예리하게 포착하여 현장감을 더한 점 등에서 그 기량이 돋보입니다. 특히 등장 인물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파악하여 해학적으로 처리함으로써 극적 분위기를 살리는 등 김홍도 풍속화의 완숙미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단원 김홍도 필 행려풍속도 제1폭 취중송사 (行旅風俗圖 醉中訟事)
朝鮮時代 / 金弘道 (1778年 34歲作品) / 絹本淡彩 90.7× 42.7cm / 國立中央博物館所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