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 김홍도 필 관동팔경 제1폭 명경대(關東八景圖 第一幅 明鏡臺)
내금강 초입 장안사 계곡에서 동쪽으로 제일 먼저 갈라지는 지류가 황천강(黃泉江)계곡입니다. 이 계곡을 따라 들어가면 영원동(靈源洞)이 나오는데 그 곳은 사후 세계인 유명계(幽冥界)를 상징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지옥문(地獄門), 시왕봉(十王峯), 판관봉(判官峯), 사자봉(使者峯), 죄인봉(罪人峯), 우두봉(牛頭峯), 명경대(明鏡臺), 업경대(業鏡臺) 등의 지명이 붙어 있습니다.
이 명경대도 그 중 하나입니다. 황천강이 못을 이루는 곳에 두 개의 바위 봉우리가 우뚝 솟아나서 마주보고 서 있는데 두 암봉이 모두 아래가 좁고 위가 넓어 마치 경대 위에 둥근 거울을 올려놓은 듯하고 둥근 바위는 황적색 빛을 띠어 황천강 물에 비치면 황금거울 같으니 어찌 이런 이름을 붙이지 않았겠는가.
단원이 44세 때인 정조 12년(1788) 가을에 어명을 받들어 관동(關東) 구군(九郡)의 해산승경(海山勝景)을 사생(寫生)하러 가서 금강산을 사생하고자 하였을 때 마침 스승인 표암(豹庵) 강세황(姜世晃)도 76세의 노구를 이끌고 금강산을 유람하려 와 있었습니다. 그의 장자 강인(姜 亻寅)이 '회양부사'로 있으면서 초청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표암은 막내 빈(儐)과 서자 신(信)을 비롯하여 자신의 제자이자 봉명화사(奉命畵士)인 단원과 복헌(復軒) 김응환(金應煥 1742~1789) 등을 거느리고 금강산을 사생 여행하게 되는데 이 그림도 아마 그때 명경대를 함께 구경하는 장면일 듯 싶습니다. 이 그림에서 황천강 변에서 명경대를 바라보는 일행이 대여섯명이고 승려 하나를 빼면 모두 갓 쓴 선비들이니 말입니다. 명경대 독립봉은 대부벽(大斧劈)을 썼으나 대담한 묵찰(墨擦)을 가하지 않아 역시 섬약한 느낌을 면할 수 없으니 주변의 다른 뭇 봉우리들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나무는 단원 특유의 운림소림수법(雲林疏林手法)을 써서 엉성한 느낌을 주는데 지옥문이 명경대 아래 계곡 사이에 어렵풋이 가로 놓여 있습니다.
제사(題辭)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름다운 옥밭에서 깨달으니, 인욕(人欲)을 없애고 천리(天理)를 행하여겠구나, 혹시 아직 스스로 체험하지 못했다면, 시험삼아 이 대를 향하고 앞에서 마음을 바춰보게나" 「瑤玉圃中覺得 人欲消而天理行 未自驗 試向此臺 前照心看」<요옥포중각득 인욕소이청리행 미자험 시향차대 전조심간>
第1幅 관동팔경도 제1폭(關東八景圖 明鏡臺)
朝鮮時代 / 金弘道(1745~1806) 絹本水墨 91.4 × 41.0cm / 澗松美術館所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