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朝鮮時代)/조선 회화(繪畵)

소치 허유 필 산수도(小癡許維筆山水圖)

鄕香 2011. 3. 11. 22:55

 

소치(小癡) 허유(1809-1892)는 처음 이름은 허련(許鍊)이었으나, 후에 중국 남종 문인화의 대가 왕유(王維)의 이름을 따서 허유라고 개명하였습니다.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마힐(摩詰), 호는 소치(小痴). 관지(款識)에는 수치(叟痴), 노치(老癡), 칠십노치(七十老癡), 팔질노치(八耋老癡), 석치(石癡), 연옹(蓮翁) 등을 사용했습니다. 중국 나라 남종화와 수묵산수화(水墨山水畵)의 효시인 왕유(王維)의 이름을 따라서 ‘허유(許維)’로 개명(改名)하였습니다. 마힐왕유의 자를 따른 것입니다.
허균(許筠)의 후예 가운데 진도에 정착한 허대(許垈1568-1662)의 후손이며, 아버지 허각(許珏)과 어머니 경주 김씨 사이에서 3남 2녀의 장남으로1809년(純祖9年)에 태어났습니다. 벼슬은 知中樞 였으며, 그는 추사 김정희를 師事하고, 고개지(顧愷之:東晋의 화가344~406), 元의 黃大癡를 비롯하여 前世 名人의 眞蹟을 연구하여 그 진수(眞髓)를 터득함으로써 산수, 인물, 매화, 대나무, 노송 및 괴석 등을 다 잘 그렸으며 특히 산수와 큰 폭의 노송에 특별히 능했습니다.
스승인 김정희로부터 "압록강 동쪽에 그를 따를 자가 없다. 나보다 낫다"는 칭찬을 듣기도 하였습니다.

이 "산수화는 8폭병풍 중의 한 폭으로서, 소치의 만년의 작품이라고 전합니다. 만년에는 대원군 이하응, 민영익 등과 상봉하던 때이며 각처를 周遊하면서 작품활동을 하던 때 입니다.

 

 

소치 허유 필 산수도(小癡許維筆山水圖)

朝鮮時代 / 許維(1809~1893) / 紙本淡彩 縱154× 橫38cm / 弘益大學校博物館所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