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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 필 심화춘감도(謙齋鄭敾筆尋花春酣圖)

鄕香 2011. 2. 17. 00:30

한국회화사에 있어서 18세기는 커다란 분수령이 이룩되는 시기입니다. 그것은 겸재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시작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겸재는 양반출신으로서 그 시기에 몰락한 양반들이 걷는 과정을 걷다가 金昌集의 천거로 圖畵署 화원이 되었습니다. 畵員이란 中人들이 가질 수 있는 기술직으로서 사대부들의 직종은 아니지만 때로는 이 시기의 沒落한 兩班들이 생계를 지탱하기 위하여 사대부로서의 명예와 특권을 포기하고 그와 같은 職에 취임하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頑固한 士人들은 화원을 천한 雜職으로 여겼습니다. 겸재의 초기의 작품이 南宗畵에서 출발한 것은 당시 한국의 화단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선비취향의 文人畵였기 때문에 그도 양반의 後裔라는 選民意識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추측됩니다. 틀에 박힌 직업화가들로 구성된 당시의 분위기 속에서 자기를 의식하려는 심리적인 갈등이 매너리즘을 거부하고 자유로운 개성을 발휘해 보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한 노력의 결정이 40대에 접어 들면서부터 이른바 겸재의 眞景山水라는 새로운 畵法이 확립되었음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  《尋花春酣圖》는 중국 故事에서 소재를 취한 것입니다. 꽃을찾아서 목숨도 버린 전국시대 楚나라 於陵仲子의 고사인 듯합니다. 春山을 온통 아름답게 물들인 꽃들에 취한 정경입니다. 찬그릇도 술병도 다 비어 있고 心身이 羽化登仙 인 양 들떠 있습니다. 멀고 가까운 산마다 墨點을 대담하게 찍었습니다.

 

겸재 정선 필 심화춘감도(謙齋鄭敾筆尋花春酣圖)

朝鮮時代 / 鄭敾(1676~1759) / 絹本淡彩 /縱 19.5cm × 橫 22.5cm /高麗大學校博物館所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