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색약수 . 선녀탕 . 용소폭포 . 12폭포 주전골(2010/9/27/월)
설악산으로 가는 길에 홍천국도를 달리고 있는데. 지축을 울리며 移動하는 기갑부대의 장갑차와 탱크의 행렬을 보면서 달리는 차에서 한 컷 담았습니다. 68년 6월18일~71년 5월28일까지 3년을 機甲部隊에서 국방의무를 마쳤기에 40년 만에 탱크의 행진을 보니 감회가 깊습니다. 저는 육군기갑학교 ATMC 29期 졸업생입니다. 남북이 휴전으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휴전이란, 호전적인 북한이 언제라도 남침해 올 수 있는 현실입니다. 지금도 북한은 도발을 밥 먹듯이 하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현실인데 일부 불순한 사람들이 자유를 역이용하여 북한을 옹호하고 온갖 폭력을 동원하여 불법시위를 주동하고 국가를 전복시키려고 합니다. 내 나라가 없으면 우리는 모두 타국의 從僕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민주평화통일이 되면 북한 주민도 우리도 모두 대한의 동등한 국민이지만, 적화통일이 되면 우리는 제2국민의 신세를 면할 수가 없습니다. 북한의 從僕의 신분이 되는 거지요. 북한을 옹호하는 사람들 정신 차리세요. 제발~~
" 世紀에 빛나는 육군기갑학교 자라는 그 곳은 尙武臺이다, 배우고 또 배워 힘을 길러서, 숭고한 전통을 이어 받들어 나가자 戰車야! 敵陳을 향해! 세기의 끝까지 뻗어 나가자!" (기갑학교歌)
" 가슴에 빛나는 삼각형 마크는 국군의 자랑이다 무적 전차병! 싸우자! 이기자! 자유을 지키자! 천지를 호령할 지상의 왕자! 지상의 왕자!" (무적 전차병歌)
설악산 국립공원 장수대 分所가 있는 곳이지요. 오색그린야드호텔로 가던 중 주변 풍경이 좋아 잠시 쉬면서.. 2010/9/27
〔오색령〕
조선 영조 때의 인문지리학자인 이중환의 저서 "택리지"에서는 백두대간 강원도 지역의 이름난 嶺 여섯 개를 손꼽았는데, 함경도와 강원도 경계의 '철령' 그 아래의 '추지령' 금강산의 '연수령' 설악산의 '오색령(한계령)'과 그 아래의 '대관령'. '백봉령'이 있었다고 했다. 그 중 으뜸으로 알려진 오색령(한계령)은 五色, 지금의 이름으로 '한계령'은 점봉산을 이은 삼각형의 한 축이 되는 산마루 고개이며, 원래 이름은 "오색령"이었다.
한계령휴게소에서 내려다 본 고갯길 풍경입니다.
「오색그린야드호텔」이 곳에 2泊3日을 예약한 동관 509호, 작은 방과 조금 더 큰방 合2개, 거실, 주방과 욕실이 완비된 25평짜리인데, 끼니를 끓일 수 있어 편리하고 전망도 좋았습니다. 짐을 정리하고 저녁식사하기에는 이른 시간이어서 12폭포까지 다녀올 양으로 숙소를 나섰습니다.
주전골 들머리이자 오색약수샘이 내려다보이는 곳입니다. 계곡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두 곳이 오색약수가 분출되는 샘입니다.
「五色藥水」의 하루 용출량은 1500L 정도라고 합니다, 조선왕조 중엽인 1,500년경에 지금은 흔적조차 없어진 절인 오색석寺의 스님이 발견했다고 합니다. 이 물은 철분이 많아서 위장병 . 신경쇠약 . 신경통 . 빈혈 등에 효험이 있다고 하며, 가재나 지렁이를 담그면 곧 죽어버릴 만큼 살충력이 강하여 뱃속의 기생충이 없어지기도 하고 아무리 마셔도 배탈이 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답니다.
"주전골"
옛날 강원관찰사가 오색령을 넘다가 주전골에서 쇠붙이를 두들기는는 소리가 들리기에 하인을 시켜 쇠 소리 나는 곳을 찾아가 살펴보게 하였답니다. 10여명의 승려들이 위조주전을 만드는 것을 발견하고 그 사실을 보고하니 관찰사가 대노하여 관련 승려들을 처단하고 그들의 사찰까지 불을 질러 버렸답니다. '오색석사'도 그때 함께 소실된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하는 사람도 있으나 확실한 검증이 없는 한 판정을 내리기에는 미흡합니다.
또 일설에는 용소폭포 주위에 있는 바위들(시루떡바위)이 마치 엽전을 쌓아 놓은 것 같이 보인다 하여 "주전골"이라 부른다고도 합니다. 남설악의 큰골 중에서도 자연경관이 가장 수려한 주전골에 흐르는 오색천은 여심폭포, 십이폭포, 용소폭포, 선녀탕 등의 名沼를 만들고, 오색약수를 지나 남대천으로 흘러갑니다.
계곡 옆 바위에서 다람쥐가 풀씨를 두 손으로 들고 오물오물 먹고 있습니다.
입 언저리에 풀씨가 붙었네. ^^
저 다 먹었어요! 라고 말이라도 하는 듯, 손을 비벼 털고 있어요.
이 다리를 건너가면 주전골 들머리 입니다.
계곡을 따라 부교로 된 등산로, 바닥이 타이어고무로 만들어져 미끄럽지 않고 쿠션도 있네요.
오색약수에서 25분 정도 걸었더니 이정표가 1.2km 왔다고 알려줍니다. 앞으로 2.4km 더 가야 12폭이군요. 어느덧 해는 뉘엿뉘엿 산등성이를 넘으려고 붉게 용을 쓰고 있습니다.
계곡을 끼고 오르는 길에는 이렇게 다리가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수없이 오락가락 합니다.
독주암 아래 동굴이 보입니다.
언제 어떻게 생겨난 동굴인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지만, 선사시대에 선사인先史人이 살던 곳은 아닌지..
"독주암"
설악산 비경의 대표적인 천불동계곡의 축소판인 주전골 입구에 우뚝 솟아있는 이 봉우리는 정상부에 한사람만 겨우 앉아 있을 수 있다고 하여 독주암이라고 한답니다.
골짜기 넘어 마주보이는 저 산봉우리들이 점봉산인지 외설악인지 이곳을 처음으로 산행하니 알 수가 없군요.
玉같이 맑은 물이 암벽을 곱게 다듬어 淸流로 흘러 아담하고 고운 사발 모양의 소沼를 만들어 하늘과 산과 나무의 거울이 됩니다. 그래서 전설을 낳는 답니다. "밝은 달밤에 선녀들이 내려와 날개옷을 반석위에 벗어 놓고 목욕을 하고 올라갔다" 하여 선녀탕이라고..여름 내내 크고 세찬 장맛비에 바위들이 떠 밀려와 아름다웠을 계곡을 엉망으로 만들었습니다. 하얀 돌바닥에 파란 비취색의 맑은 물이 沼를 이루고 여울처럼 흘렀을 테지요.
희거나 검푸르거나 황갈색의 기묘한 바위산의 아찔한 절벽과 기묘한 돌 틈에 멋들어진 교태를 부리 듯 비틀고 휘어진 다홍의 줄기에 푸르디푸른 솔잎의 소나무, 참으로 멋지게 어울리는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풍경이지요.
온갖 형상의 群像들이 기라성을 이룬 저 봉우리들을 보면 이끌리는 마음에 자지러지고 발걸음은 절로 흥겹습니다.
아름다움이 넘쳐 절경이었을 이 계곡도 바윗돌과 자갈 모래가 흉물스럽게 들어 앉아 보는 이의 마음을 아쉬움으로 채워주고 있습니다.
주전골은 설악산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어 외설악의 포근함을 함께 볼 수 있는 곳으로, 주전골의 한 가운데에 위치한 이곳을 지나면 용소폭포 12폭포 등 주전골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다하여 이곳을 금강문이라 부른답니다. 예로부터 불교에서는 잡귀가 미치지 못하는 가장 강한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생각하였으며, 이러한 아름다운 곳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금강문을 거쳐야만 했던 것입니다. 금강산에는 5개의 금강문이 있다고 합니다.
수억 년의 세월에 패이고 돋은 면면과 그 틈새 듬성듬성 돋아난 소나무가 마치 노인의 얼굴과 머리털 같은 느낌을 줍니다.
용소폭포와 12폭으로 갈리는 길목에 이정표가 친절하게 용소폭포는 가까우니 용소폭포를 먼저 보고 흘림골의 12폭으로 가라는군요.
삼거리 갈림길에서 부교로 좀 걸어가니 다리 밑으로 용소폭포가 보입니다. 傳說에 의하면 "옛날 이 소에서 천년을 살던 이무기 두 마리가 승천하려 했으나 암놈 이무기는 준비가 안 되어 승천할 시기를 놓쳤는데, 龍이 되려다 못 된 암놈 이무기는 바위와 폭포가 되었답니다." 암놈 이무기는 승천하지 못한 恨을 물줄기로 풀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오묘하게 파인 바위, 하얗게 쏟아져 내리는 물결, 뽀얗게 솟아 퍼지는 포말, 비취색의 물결 말할 수 없이 아름답습니다.
성숙한 여인의 象徵같은 느낌이 듭니다.
다시 갈림길로 되돌아왔습니다. 12폭으로 가야지요.
계곡의 양쪽이 가파른 岩山이고 보니 등산로를 이렇게 설치할 수밖에 없었음을 공감합니다. 걸어 오르기에도 좋고, 안전에도 좋고 폐타이어를 재활용하는 면에서도 좋으니 참 잘한 생각입니다. 다만 주변 경관에 이질감이 들어 아쉽지만..
그냥 지나치기에는 참 아쉽게하는 저 고운 물빛... 모든 생명과 사물의 根源이기에 가장 소중한 것이지요.
좌측 봉우리 중 하나인 이 岩峯은 帝王 앞에 양팔을 굽혀 손을 포개 소매 끝이 맞닿게 하여 禮를 갖추고 서있는 모습처럼 보입니다.
암석으로 이루어진 V자형 계곡 좁은 곳에 큰 바윗돌이 걸쳐있어 마치 동굴에서 물이 曲을 이루며 흘러내리는 모습입니다.
점봉산에서 시작하여 주전골의 비경과 함께 열두 번 굽이굽이 흘러 폭포를 이루었다하여 십이폭포라고 한답니다. 12段 12瀑의 비단폭 같이 굽이치는 계곡을 따라 물보라를 일으키며 흘러내리는 와폭臥瀑으로 너무 길어 폭포의 전체 모습을 한눈에 볼 수는 없지만 탐방로를 따라 올라가면서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각 부분의 모습은 장관입니다.
원만한 경사를 흘러내리는 폭포의 물줄기가 바위에 널어놓은 비단 幅처럼 바람결에 이리저리 너풀거리는 것 같이 보입니다.
좀 더 위로 올라가서보니 물결이 세차게 흘러내립니다.
마치 곤두박질하듯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를 바라보니 덧없이 보낸 세월의 흐름 저편 뒤안길이 떠오릅니다. 길지도 않은 한평생을 저리 보낸 것은 아닌지...
12폭에서 바라본 주변의 봉우리들입니다. 해는 산 넘어 가고 땅거미 질 무렵이니 어쩔 수없이 여심폭포와 흘림골은 다음으로 기약하고 숙소인 오색으로 아쉬운 발길을 돌립니다.
오색석사(성국사)
이 절은 신라말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가지산파(迦智山派)의 開祖 도의선사(道義禪師)가 창건했으며, 도의선사는 헌덕왕(809~825) 때에 당나라에서 혜능(慧能)에게 법을 배워 귀국한 뒤 동설악(東雪岳)의 진전사(陳田寺)와 함께 이 절을 창건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절의 후원에 있던 나무에서 5가지 색의 꽃이 피었기 때문에 절 이름은 오색석사, 지명은 오색리라 하고 그 아래의 약수도 오색약수라 했다고 합니다. 현재 절은 퇴색되었지만, 신라시대의 3층석탑(보물 제497호)· 석사자(石獅子)· 탑재(塔材) 등이 산재해 있어 절의 역사가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襄陽 五色里 三層石塔
3층의 典型樣式을 따르고 있는 통일신라 석탑입니다. 이중기단 위에 3층의 塔身이 설치되었는데 탑신에는 隅柱만 조각되었으며,
屋蓋石은 4단의 받침이 조각되고 추녀선이 직선이며 네 귀가 약간 위로 솟아있어 경쾌하고 간결한 반전의 멋을 지녔습니다. 相輪部는 결실되었으며 塔의 높이는 약 5m 입니다. (寶物 第497號)
<2010/9/27> 仁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