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朝鮮時代)/조선 회화(繪畵)

단릉 이윤영 필 관동승경도(삼척 능파대. 단양 옥순봉, 서을 화적)(丹陵李胤永筆關東勝景圖)

鄕香 2010. 2. 3. 16:23

 

이윤영(李胤永1714~1759)의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윤지(胤之), 호는 단릉(丹陵)·담화재(淡華齋)·담초재(澹草齋)이며, 이색(李穡)의 14대손으로 아버지는 단양부사 기중(箕重)이며, 서울 서대문 밖의 반송지(盤松池) 부근에 살면서 연못가에 정자를 짓고 오찬(吳瓚)·김향묵(金向默)·이인상(李麟祥) 등과 더불어 시회(詩會)를 열며 교유하였습니다. 벼슬길에 나가지 않은 채 고기(古器) 수집과 전각 산수 등에 심취하여 지냈으며, 말년에는 아버지가 부임했던 단양의 구담(龜潭)에 우화정(羽化亭)을 짓고 은거하였습니다. 시·서·화에 뛰어난 삼절(三絶)로서 글씨는 예서와 전서에 능했으며, 그림은 갈필의 수묵표현법 등에서 이인상매우 유사한 화풍을 보였으나 필치가 좀더 부드럽고 온화하며,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간단한 문인화풍으로 그려진 〈경송초루도 徑松草褸圖〉(국립중앙박물관)와 실경을 남종화법으로 그린 〈능파대도 凌波臺圖〉(고려대학교 박물관)·〈고란사도 皐蘭寺圖〉(개인 소장) 등이 있으며, 저서로 〈단릉집〉과 〈단릉유고〉가 전합니다. 

 

이윤영(李胤永1714~1759)은 제한된 공간에 주제를 부각시키는 솜씨가 뛰어납니다. 호기를 부리지 않은 세필의 담백한 필치로 관동지방의 세 곳의 경치를 선면에 담았는데, 첫째는 삼척에서 가까운 '능파대'를,  두 번째는 단양의 '옥순'을, 세 번째는 서울에서 백여리 떨어진 '화적'을 각각 묘사하였습니다.  

 

첫 번째 이 작품은 부채 화면의 상단에 " 海石 名凌波臺 在三陟府北東十里. ( 바닷바위, 이름은 능파대인데 삼척부에서 북동쪽으로 십리거리에 있음.)"라고 썼는데, 이렇게 실경을 그리고 위치나 명칭을 밝힌 것은 정선 . 김응환 . 장시흔 . 김홍도 등 실경산수화를 많이 그린 화가들의 관행이었습니다.

화면의 앞쪽 근경에는 뾰족한 암골과 능파대 위에 앉아서 손짓을 하면서 먼 곳의 산과 바다를 구경하고 있는 두 인물을 그렸습니다.

 

 

 관동승계도 (關東勝景圖 ) "능파대도"

朝鮮18世紀 /李胤永1714~1759 / 紙本淡彩 /縱 22.5 × 橫 57.3 cm /高麗大學校博物館

 

 

두 번째 이 작품은 단양의 옥순봉으로 화면의 왼쪽과 윗쪽으로 그린 중경과 원경은 곡선구도에서 부드러운 느낌을 줍니다. 수묵과 담채가 맑고 온화한 화면의 왼쪽 위의 여백에 " 江石 名玉筍 在淸風上丹陽初境 . (강바위, 이름은 옥순인데 청풍 상류지역 단양의 초입에 있음.)"이라 썼습니다. 화면 전체에 전개된 경치는 병풍 같은데 강 중심에는 우뚝 솟은 옥순봉과 그 아래에서 배를 타고 구경하는 두 인물을 그렸습니다.

 

 

 관동승계도 (關東勝景圖 ) "옥순봉도"

朝鮮18世紀 /李胤永1714~1759 / 紙本淡彩 /縱 22.5 × 橫 57.3 cm /高麗大學校博物館

 

 

세 번째, 화면 상단에 " 溪石 名禾積 距東百餘里.(시냇바위, 이름은 화적인데 서울과 일백여리 떨어진 거리에 있음.)"라고 쓴 이 그림은 화적과  그 아래의 淵을 그렸기 때문에 <禾積淵圖>라고도 합니다. 『關東勝景圖帖』은 해석 능파대 . 강석 옥순봉 . 계석 화적석을 주제로 한 연작입니다. 정선의 필법을 따르지 않은 또 다른 진경산수화파를 이 작가를 통해서 볼 수 있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그가 40대에 작고하여 비교적 남아 있는 작품이 적은 가운데 이 세점의 작품들은 그의 화격을 볼 수 있는 좋은 자료입니다.  

 

 

관동승계도 (關東勝景圖 ) "화적연도"

朝鮮18世紀 /李胤永1714~1759 / 紙本淡彩 /縱 22.5 × 橫 57.3 cm /高麗大學校博物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