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원 김양기 필 응도 (肯園金良驥筆鷹圖 )
하단에 대각선으로 언덕 내지 斷崖를 나타냈고 상단에 折枝翎毛로 아래를 응시하는 매 한 마리를 등장시켰으나 포획의 대상인 토끼나 꿩 등은 보이지 않습니다. 樹枝法이나 土坡 등에서 김홍도와 이를 따른 그의 아들 김양기의 화풍을 통하는 친연성은 보여지나 격조나 기량에 있어 떨어짐이 감지됩니다. 최하단에 비교적 방정한 서체로 쓴 조선 김긍원(朝鮮 金肯園)의 관서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구도는 조선 후기 화단에 있어 崔北(1712~1786경), 申潤福(18세기 말~19세기 초)이나 沈師正(1707~1769), 劉淑(1827~1873)이나 張承業(1843~1899) 등 조선 말기에 이르기까지 줄기차게 그려졌습니다.
김양기의 본관은 김해. 자는 천리(千里), 호는 긍원(肯園)·낭곡(浪谷). 김홍도(金弘道)의 아들로 화원을 지냈으며, 산수·인물·풍속·화조·영모(翎毛) 등 다양한 소재를 다루었고, 행적에 관해서는 조희룡(趙熙龍)과 교유관계가 있었다는 사실 이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조희룡의 〈호산외사 壺山外史〉에 의하면 "가법(家法)을 이어받아 산수와 집과 수목을 잘 그렸으며, 아버지보다 뛰어난 안목을 가졌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존하는 그의 작품에는 아버지의 영향이 뚜렷이 보이지만 전반적으로 아버지 수준에 미치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투전도 鬪牋圖〉는 인물처리에서 아버지의 영향이 보이지만 산만한 구성 등에서 아버지에 미치지 못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산수화에서는 심사정(沈師正)·최북(崔北)·이인문(李寅文) 등의 화풍이 부분적으로 보입니다. 작품으로는〈고목소림도 古木疎林圖〉(간송미술관 소장)·〈월전취적도 月前吹笛圖〉(국립중앙박물관 소장)·〈송하모정도 松下茅亭圖〉(호암미술관 소장)·〈장량취적도 張良吹笛圖〉 등이 있습니다.
응도 (鷹圖 )
朝鮮 19世紀 /金良驥(1792~18221892 ?) /絹本淡彩 120 ×41.0 cm /國立晋州博物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