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법흥사(寧越 法興寺)
법흥사는 통일신라 말기 선문9산 중 사자산문의 중심도량인 흥령선원지의 옛터랍니다. 신라 고승 자장율사가 이 절을 창건하였고, 도윤국사와 징효국사때 산문이 크게 번성하였는데, 진성여왕 4년(891년)병화로 소실되어 겨우 명맥을 이어오다 그 후 고려 혜종1년(944년)에 중건하였으나, 그 뒤 또 다시 소실된 채 천년 가까이 그 명맥만 이어오다가 1902년 법흥사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신라 때의 대찰이어던 관계인지 寺址가 참 넓었습니다.
이 곳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과 징효대사 보인탑비(보물 제612호) 징효대사부도(강원도 유형문화재제72호) 법흥사 부도(강원도 유형문화재제73호) . 법흥사 석분(강원도 유형문화재제109호)등이 있습니다.
일주문이 볼만 합니다. 정면에는 "사자산 법흥사(獅子山法興寺)라는 현판이 달려있습니다 .
일주문의 두 기둥의 받침돌 대신 하단을 화강암으로 거북과 코끼리의 형상을 조각하여 그 위에 짧은 기둥을 올리고 일주문 지붕을 올렸습니다.
석가모니 진신사리가 봉안되었음을 상징이라도 하려는 듯 옛 인도의 불교적 상징동물인 코끼리의 형상을 웅대하게 잘 다듬어 세웠습니다.
거북형상은 여의주를 입에 물고 있는 용의 머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 아래 단석에는 12支神像을 돌려가며 새겼습니다.
안쪽의 현판에는 바깥 쪽과는 달리 " 사자산문흥녕선원(獅子山門興寧禪院)이라고 쓰였네요. 이는 신라 때 창건 당시의 옛 이름이지요. 갑골문으로 쓴 사자산이란 글씨가 이채롭습니다.
팔작지붕의 건물이지만, 학이 날아갈 듯 날개를 활짝 편 듯한 감은 없고, 중후한 감이 있는 것은 네 귀퉁이 추녀 끝이 비교적 평편한 단조로움과 단청없이 세월에 쌓인 풍상의 고졸한 멋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면면한 크기에 정면(3칸반)과 측면(세칸)의 폭이 엇 비슷한 이 건물은 단정함이 있으며 맛배지붕에서나 느낄 수 있을 엄숙함 마져 느끼게 합니다.
징효국사 부도(澄曉國師 浮屠)
부도는 스님의 죽엄을 화장하여 남은 유골이나 사리를 모신 일종의 墓塔입니다.
이 부도는 두 개의 네모난 돌을 바닥에 깔고 팔각의 아래 받침돌을 놓았는데 각 면에는 眼象(부도 면석에 팔면의 오금곡선으로 안쪽을 파낸 모양)이 새겨져 있고, 그 위에 연꽃무늬가 새겨진 받침돌이 놓여 있습니다. 가운데 받침돌은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팔각으로 된 각 면에는 모서라기둥이 새겨져 있습니다. 위 받침돌의 윗면은 둥근 모양으로 되어있으며, 아래쪽에는 팔각의 괴임이 있고 그 위로 옆면에는 위로 향한 연꽃무늬를 두 겹으로 돋을 새김하였습니다. 몸돌은 팔각형의 북(鼓)모양인데, 앞뒤 양면에는 자물쇠가 달린 문틀(龕室)이 새겨져 있습니다. 지붕돌은 팔각으로 지붕 끝 내림마루에 귀꽃(부도 지붕돌의 추녀마루 끝에 꽃무늬를 새긴 장식) 이 장식되어 있고, 물매는 완만한 편입니다. 지붕돌의 정상 부분은 팔각의 받침돌을 놓고 보개(부도 상륜의 보륜과 수연 사이의 지붕 모양의 장식)를 받게 하였으며, 보개는 지붕돌과 거의 같은 모습입니다. 보개의 정상은 하나의 돌로 된 연꽃 봉우리의 보주(寶珠 : 부도의 상륜부에 놓인 둥근 모양의 구슬)을 얹어 놓았습니다. 부도의 위치로 보아 塔碑와 같은 시기에 만들어 진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부처의 육두 모양의 머리를 한 아주 오래 된 전형적인 부도인데, 그 주인은 알 길이 없습니다.
(澄曉大師 寶印塔碑) 영월군 수주면 법흥리
이 비석은 징효대사의 비로 고려 혜종1년(943년)에 세운 것입니다. 징효대사는 신라 말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사자산문파(獅子山門派)를 연 철감선사(澈監禪師) 도윤(道允)의 제자로, 흥녕사(興寧寺 : 지금은 법흥사)에서 禪宗의 法門을 크게 일으켰던 사람이랍니다. 비문의 내용은 징효대사가 평생동안 한 일과 신라 孝恭王이 징효대사라는 시호와 寶印이라는 탑명을 내린 것 등을 적고 있습니다. 비석의 글은 최언위(崔彦撝)가 짓고, 崔潤이 썼으며, 崔奐規가 새겼답니다. 이 비석은 신라말 고려초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塔碑로 비 받침은 거북모양이며, 비몸 받침 위에 비석을 세우고 그 위에 용을 새긴 비 머릿돌을 얻었고, 비 받침의 거북머리는 용머리를 본떴는데 부릅뜬 눈에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습니다. 비 머릿돌에는 네 마리 용과 "故 澄曉大師"라는 篆書體 글씨가 새겨져 있으며, 비 머릿돌 위에는 장식물인 寶輪 . 寶珠 를 얹어 놓았습니다. 전체적으로 섬세하면서도 웅건한 느낌을 줍니다. <寶物第612號>
禪院에서 부처(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임을 이리 표현하여 알리는 요란스러움에서 세태의 흐름을 봅니다.
고요로움이 흐르는 山寺... 옛 이야기입니다. ㅎ
석가모니 진신사리가 안치되어 있는 寂滅寶宮으로 가는 길에서..
샘물로 목도 축이고..
어느 님의 염원을 나무 흠집 틈에서도 보면서...
(寧越 法興寺 石墳)
이곳은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도를 닦던 곳이라고 傳한답니다. 이야기 대로라면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아야 겠지요. 돌방의 겉 모습은 흙을 몽긋하게 덮어 무덤(古墳)처럼 보입니다. 안내문에 의하면, 돌방의 입구는 네모꼴로 만들었으며, 통로를 통해 돌방 안으로 들어가 보면, 바닥은 평평하고 벽면은 둥그스름 하며, 돌방 벽은 6단을 수직으로 쌓았고, 7단부터 큰돌로 모줄임하여 10단까지 쌓아 천장은 한장의 판석으로 덮었답니다. 돌방 안의 크기는 높이 160cm, 길이 150cm, 너비190cm 정도랍니다. 돌방 안에는 지금 돌방 뒤편에 있는 돌널이 들어있었다고 하는데, 그 돌널의 용도는 고승의 유골을 모셨던 것으로 보이며, 돌방은 스님의 도를 닦던 곳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지금은 전면에 화강암으로 단을 쌓아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저의 생각으로는 위와 같은 내부 설명과 외부 겉 모양으로 봐서는 삼국시대 횡혈식석분(橫穴式石墳)일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寧越 法興寺 浮屠)
이 부도는 징효대사 부도와 같은 형식이나, 누구의 부도인지 알려지지 않습니다. 일명 사리탑이라고도 하는 이 부도는 넓고 네모난 돌을 바닥에 깔고 1단의 층을 만들어 팔각의 아래 받침돌과 겹꽃잎 연꽃 무늬가 새겨진 받침돌을 놓았습니다. 아래 받침돌 각 면에는 안상탑 면석에 팔면의 오금곡선으로 안쪽을 파낸 모양이 조각되어 있고, 그 안에는 큼직한 꽃들이 돋을새김 되어있습니다. 가운데 받침돌은 팔각으로 각 면에는 양쪽에 모서리기둥이 새겨져 있고, 위 받침돌 옆면을 둥근 모양으로 두 겹의 연꽃을 새겨 놓았습니다. 몸돌은 위아래가 약간 좁아진 배흘림이 있는 팔각으로 앞 . 뒤 양면에는 자물쇠가 달린 문틀이 새겨져 있고, 나머지 여섯 면에는 神將像을 돋을새김 하였습니다. 지붕들은 아래 면에는 3단의 괴임이 있으며, 지붕면은 들려있어 귀꽃탑 지붕돌의 추녀마루 끝에 꽃무늬를 새긴 장식 등과 잘 어울립니다. 지붕돌 위에는 복발(탑의 목발 위에 주발같이 엎어 놓은 장식)을 얹어 놓았으며, 보개(탑 상륜의 보륜과 수면사이의 치릉모양의 장식)는 지붕돌과 같고, 그 위에 보주(탑의 상륜부에 놓인 둥근 모양의 구슬)가 있습니다.
겹꽃잎 文樣은 통일 신라시대에 瓦塼이나 탑 등에서 나타나는 문양방식입니다.
아래 위 사진 보시기에 어떻습니까?
말씀드렸지만, 토굴이 아닌 고분같습니다. 안은 볼 수 없지만, 삼국 초기 무덤양식인 橫穴式石室墳 같은 느낌이 듭니다.
(寂滅寶宮)
적멸보궁이란,
불상(佛像)을 전혀 모셔놓지 않고 법당 안에는 단(壇.戒壇)만 있고 속이 텅 비었으며 법당 밖 뒤편에는 사리탑을 봉안하여 놓은 곳이지요. 이러한 곳을 적멸보궁, 또는 보궁이라 하는데 이는 사리탑에 부처님의 진신(眞身) 사리를 모신 보배로운 곳이란 뜻입니다. 신라 진덕여왕 때 자장(慈藏) 스님이 중국 오대산에 가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부처님 가사와 사리를 받아와 우리나라의 가장 수승한 땅에 부처님 사리를 봉안하여 모셨는데 경남 양산 통도사(通度寺)에 부처님 가사와 사리를 모시고, 금강 계단을 세웠고, 강원도 설악산 봉정암(鳳程庵), 오대산 상원사(上院寺)에 각기 사리를 모시고 적멸보궁을 지었답니다. 또 강원도 영월 사자산 법흥사(法興寺)와 태백산 정암사(淨岩寺)에도 부처님사리를 봉안하고 적멸보궁을 세웠습니다. 이로써 이곳을 3대 적멸보궁, 5대 적멸보궁이라 통칭한다지요. 이야기인 즉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 사리(眞身舍利)를 봉안한 불전을 지칭하여 적멸보궁이라 합니다.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모심으로써 부처님이 항상 그곳에서 적멸의 낙을 누리고 있음을 상징하게 됩니다. 부처님 생존시는 인도 마가다국 가야성의 남쪽 보리수 아래로, 를 설파한 적멸도량임을 뜻합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는 곧 법신불(法身佛)로 부처님의 진신이 상주하고 있음을 의미하며 여기에는 예불의 대상으로 따로 불상을 봉안하지 않고 불단(佛壇)만 있는 것이 다른 불전과의 차이점이겠습니다. 이곳의 진신 사리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뒷산 어딘가의 작은 토굴 속에 봉안되었다는군요. 적멸보궁 뜨락을 정갈하게 정성껏 비질하는 보살님이 참신하게 마음에 닿습니다. ㅎ
제2 적멸보궁전입니다.
들여다보니 불상은 없고 壇만 있군요. 석가의 진신 사리가 봉안된 사찰인 만큼 다른 불상을 모실 수가 없겠지요.
제2 적멸보궁 댓돌에서 바라 본 앞산의 모습인데요. 산의 보임형상이 누워있는 부처(臥佛)모습이라고 누군가 이야기해 주시기에 사진에 담았는데,
흐릿합니다. 날씨가 흐릿하게 연무와 같은 구름이 대기를 덮은 까닭이랍니다. 용서하세요~~ ㅎ
이것저것 다 보고 내려가는 길만 남았나봅니다. 해서 뒤를 돌아보니 샘물이 몸짓을 합니다. 갈 길이 먼가본데 물배라도 두둑이 채우라는 군요, ㅎ
이 몸 젼 떨어진 걸 다 아시나 봅니다. ㅎㅎ
내 가는 길에 금강 솔이 시립해 마중을 하니 기분 나쁘지 않고, 잡목 발그레 수줍음을 타니 이 또한 내 맘 싫지 않아라~~~ ㅎㅎ
玉石, 이를 두고 하는 말이렷다. 티 하나 없이 말고 하얀 돌 돌 돌,
玉溪, 맑디맑아 있는지 없는지 투명하고 그 청량함에 너 玉水 물 물 물...
엄마의 혼신을 다해 정성껏 신령님께 올린 淨寒水이련가 맑고 맑은 네 정갈함에 내 마음 깊이 모르게 잠긴다.
돌은 무엇이고, 산은 무엇이고, 하늘은 무엇인가 ! 시시 때로 다른 기쁨, 다른 슬픔, 다른 감동으로 나를 전율케 하느뇨.
모든 것에 느끼며 사랑하며 나 네 품에 잠긴다.
나 그렇게 취하고 젖어 듬에 까닭이 있었구나! 네 이름이 酒泉이었음에야...
흥법사에서 정갈해진 五腸이 이곳 소머리 국밥 한 그릇에 六腑까지 걸어진다. ㅎ
고맙습니다.
2009/11 /5 영월 에서... - 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