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15~17세기) 벼루 (朝鮮時代 15~17世紀) 硯
《오주연문장전산고》의 <연재변증설>에 "우리나라에서는 돌만으로 벼루를 만들지 않고 桐.竹.蘆.漆.파려(유리 또는 수정).玉.陶瓦.銅鐵 등이 다 벼루로 쓸 수 있다. 盛京通志>에 「동과목(東瓜木)은 느티나무 . 버드나무와 그 껍질색이 비슷하여 푸른 색의 단단한 심재는 硯材로 사용하는바 매우 기이하다.」하였는데 지금 그 글을 보니 우리나라의 모과나무이다." 라고 하여 위에 열거한 재료 외에 모과나무로도 벼루를 만들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最古의 벼루는 가야및 삼국시대의 陶硯 입니다. 또 통일신라시대의 木心漆硯 이 있어 일찍부터 다양한 벼루가 만들어 졌음을 짐작케 하나 고대의 벼루에 관한 문헌상의 기록이 전혀 없으며 또한 유물도 위에 언급한 것외에는 없는 실정입니다. 고려시대 李奎報(1168-1241) 詩 중 벼루에 관한 <작은 벼루에 대한 명 . 小硯銘> . <벼루가 깨지다 . 破硯>두 편의 詩의 내용으로 보아 재료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파연'이란 시에서는 돌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에 비록 돌 벼루를 사용하였으나 그 품질은 썩 좋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중국 송나라와의 국교<선화 6년(1124)>9월에서 우수한 물품들로 사용된 예물 목록에 종이.붓.먹. 등과 나전연갑.나전필갑은 있어도 벼루는 없었다는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의 벼루가 우수했다면 그 목록에 포함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으니까요. 조선시대에는 전국 산지에서 나는 각종 硯石으로만든 벼루들이 생산되었으며 <경도잡지> . <임원경제지> . <규합총서> . <오주연문장전산고> 등에 벼루의 산지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임원경제지> . 《 동국연품》에 있는 우리나라의 벼루돌 산지와 특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남포(藍浦) 금사문석.은사문석.화초석 : 금사문석이 최상이고 다음은 은사문석이다.
* 위원(渭原) 청석 : 흡주석과 비슷하며 홍석은 단계석과 비슷하다.작고 아름다운 무늬가 있는 돌은 물속에 쌓여 있다.
* 고령석(高靈石) 다소 깔깔하나 고담하며 광택이 없다. * 평창(平昌) 자석(紫石) : 아름답고 화초문이 있다.
* 풍천(豊川) 청석 : 매우 단단하며 瓦硯 처럼 거칠다.
* 안동(安東) 마간석(馬肝石) : 가장 품질이 떨어지며 그 중 아름다운 것이라도 다른 돌에 미치지 못한다.
*종성(鐘城)아란석(鵝卵石) : 오룡천에서 산출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으뜸이다.
*갑산석(甲山石).무산석(茂山石) : 역시 아릅답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연재변증설)에는 "우리나라 벼루는 남포 . 보령산 烏硏石 이 가장 아름답고 중국에서도 유명하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안동 구룡산의 물에 잠긴 마간석은 그 다음으로 아름답다" 하였습니다.
그 밖에 벼루 산지에 관한 내용은 <임원경제지>와 동일하며 더 추가되어 기록된 것은 "郭山 紫硏石 . 고원(高原)연품과 파주 목진산(牧鎭山)의 정상에서 나는 오연석 중 화초석(花艸石)이 아름다우며 그밖에 長淵 장산천 언덕 아래의 물속에서 나는 烏倉硏石 중 금선의 여러가지 무늬가 있는 돌도 아름답다. 하였습니다.
《규합총서》<팔도소산>의 기록에서 산지별로 발췌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남포 : 오석.화초석 , * 곽산 : 채석연 . *안동 : 마간석 , *해남 : 화반석(華斑石) , *중천.종성 : 벼룻돌 , *좌수영 : 玉梅山의 花斑石 , *평창 : 청염삭 , *부산 : 마뇌석을 들었으며 벼루에 관해서는
"벼룻돌은 중국 단주연이 귀하고 우리나라 남포 石卵石이 곽산 채석연 보다 훨씬 나아 으뜸이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우리나라는 여러 곳에서 양질의 硯材가 생산되어 징니연은 만들지 않았습니다. 벼루는 중국과의 통상예물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으나 우리나라의 벼루의 품질이 우수하여 조선 초기부터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중국의 사신들이 벼루를 요구하였음은 《조선왕조실록》곳곳에 기록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중국으로 가는 사절단들도 개인적인 예물로서 벼루를 준비하였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의 선비들은 중국의 단연과 흡주연을 귀하게 여기어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 오면서 벼루를 구해 오거나 선물로 받아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벼루 중에는 중국 벼루가 상당수 있습니다.
벼루의 명칭은 재질 . 산지 . 형태(체식과 조각)등에 의해 부르기도 하나 일반적으로 이 세가지를 혼합하여 부르므로 그 명칭은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벼루의 體式은 방형 . 風字形 . 원형 . 타원형 . 팔릉형 등이 있으나 기본형은 方形입니다. 벼루는 조각이 전혀 없는 것도 있으나 여러 무늬를 조각하여 장식한 것이 더 많습니다. 무늬에는 포도 . 용 . 산수 . 국화 . 십장생 . 물고기 . 荷葉에 물고기나 개구리 오리를 곁들여 장식한 것 등이 있습니다.
1 . 드 높은 산에 조각달 걸리고 구름은 잠든 저녁에 기러기는 북쪽 하늘을 향하는데, 나무가지를 얽어매어 길를 서두르는 인사에 담긴 뜻을 내 어찌 알리오. 연당 . 연홍(硯堂.硯泓 : 먹을가는 자리)과 묵지.연지(墨池 .硯池 : 먹물이 고이는 곳)를 두 개의 원이 겹친 형태로 마련된 것을 일월벼루라 이릅니다.
산수문일월벼루(山水文日月硯)
朝鮮 15~17世紀/높이1.8 cm, 17.6 ×10.5 ,/ 國立中央博物館 所藏
2 . 매화와 대나무와 사철 푸른 솔은 곧고 맑고 절개와 일심의 선비 정신이요, 그 아래 반상을 놓고 앉은 노인들은 필시 도인임이 분명한데, 그 모습이 넉넉한 여유로움을 풍깁니다.
매죽송문일월벼루(梅竹松文日月硯)
朝鮮 15~17世紀/높이2.6cm, 24.0×13.3 ,/國立中央博物館 所藏
3 . 硯上 가득 매화가 가득 피었습니다. 일월연 수면(墨池)에는 소금강이 기기묘묘하게 비칩니다.
매화문일월벼루(梅文日月硯)
朝鮮 15~17世紀/높이3.3cm, 39.0 ×24.8 ,/ 國立中央博物館 所藏
4 . 포도문은 가문의 번성과 부귀와 영화를 기원하는 문양으로 쓰입니다. 포도나무에 원숭이가 메달려 포도를 따고 있습니다. 정교하게 양각 시문한 아름다운 硯입니다.
포도문일월벼루(葡萄文日月硯)
朝鮮 15~17世紀/높이2.2 cm, 26.3 ×17.2 ,/ 박영숙 所藏
5 . 솔과 대나무와 구름 무늬가 수준 높게 새겨졌습니다. 선비들은 곧은 절개를 생명처럼 알고 몸으로 표현하고 마음으로 담고자 했습니다.
매죽송문일월벼루(梅竹松文日月硯)
朝鮮 15~17世紀/높이 2.4cm, 21.2×13.2 ,/ 윤달 所藏
6 . 포도문은 15~17세기에 유행하던 문양으로 조선 동화백자와 청화백자에도 많이 사용되었지요.
포도원숭이문일월벼루(葡萄猿文日月硯)
朝鮮 15~17世紀/높이1.9 cm, 25.4×15.2 ,/ 國立中央博物館 所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