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장.인주합.날인구(印章.印朱盒.捺印具)
印章은 일반인들에게 각종 서류에 찍는 사람의성명이 새겨진 도장이라고 인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인장은 임금의 새(璽)로 부터
하부 관청에 이르기까지의 각종 관인이 있으며 개인의 私印에도 용도에 따른 여러 형태 . 종류가 있습니다.
인장의 재료는 금.은.동.철 등의 금속과 옥.석.상아.수각.수정.보석류.나무.磁器 등 다양한 재료가 쓰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印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것은 단군신하의 천부인(天符印)부터 입니다.
이 천부인은 風伯 . 雨師 . 雲師의 表證으로 신령의상징으로 나타내는 것인데, 이런 점에서 印 자체가 막강한 권력을 동반하고 있음을
뜻한다고 해석됩니다.
문방에서 선비들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다음 서명을 하고 검인(鈐印 : 도장을 찍는 것)하는 것을 낙성관지(落成款識)라 합니다.
이는 완성했음을 뜻하며 흔히 낙관이라고 통용합니다. 낙관이란 작가로서의 견식과 능력을 나타내는 즉 믿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관지란 중국 고대 銅器의 銘으로 문자가 음각된 것을 관문(款文)이라 하고 양각된 것을 지문(識文)이라 한것으로부터 유래되었습니다.
인장은 작품의 완성뿐 아니라 감상이나 수장 또는 탁본했을 때에도 찍습니다. 이와 같이 사용되는 인장은 예술작품의 공간에 존재하며
여백의 공간을 살리는 특징을 지닙니다. 그러므로 인각은 예술의 범주에 속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조선시대의 선비들 사이에는 여기(餘技)적인 예술로서 印刻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현존하는 조선시대 인장의 대부분은 방각(傍刻 ; 款記를 刻한것)이 없어 제작자.제작연대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한 이유는 선비들의 여기적인 전각(篆刻)도 드러내 자랑할 것이 못된다는 匠人 천시의 사상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 유물들은 민영환순국열사 유품입니다.
(印章)
朝鮮時代(19世紀)/높이8.4cm, 3.5×1.3(오른쪽) /高麗大學校博物館 所藏
인주합(印朱盒)
朝鮮時代(19世紀)/높이1.1cm, 3.5×2.3 /高麗大學校博物館 所藏
날인구(捺印具)
朝鮮時代(19世紀)/두께1.0cm, 15.8×6.5(왼쪽두번째) /高麗大學校博物館 所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