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국 제18대 현종대왕, 명성왕후 김씨(숭릉)/顯宗大王, 明聖王后 金氏(崇陵)
《현종·명성왕후 김씨 / 숭릉》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산 2-1 동구릉 내
崇陵은 조선 제18대 현종(顯宗1641-1674. 재위1659-1674)과 왕비 明聖王后 金氏(1642-1683)의 陵이다. 현종은 제17대 孝宗의 맏아들로 조선 역대 국왕 중 유일하게 외국(청나라 심양)에서 태어나셨다. 효종의 뒤를 이어 1659년 창덕궁 인정전에서 왕위에 오르셨고, 함경도 산악지대를 개척하고 호남지방에 大同法을 실시하셨고 銅鐵活字의 鑄造 등의 치적을 남기셨다. 그리고 예송논쟁(禮訟論爭)으로 붕당싸움이 치열한 상황을 겪기도 하셨다. 1674년 34세로 창덕궁 양심합에서 돌아가셨다.
명성왕후는 淸風府院君 金佑明의 따님으로 효종 2년(1651) 10세에 세자빈이 되셨으며, 1659년 현종이 왕위에 오르시자 왕비에 책봉되셨다. 현종과 사이에 1남(숙종) 3녀(명선, 명혜, 명안공주)를 두셨다. 숙종 9년(1683)에 42세로 창덕궁 저승전에서 돌아가셨다.
〈홍살문紅箭門〉
신성한 곳임을 알리는 붉은 색을 칠한 나무문으로 홍전문紅箭門 · 홍문이라고도 한다. 화살모양의 살대는 법도法度의 곧고 바름을 의미하여 나라의 위엄을 상징한다. 능역의 들머리에는 홍살문이 서 있고 제관祭官들이 능을 찾아 왔을 때 절을 하는 판위版位가 옆에 있다. 홍살문에 도착한 제관은 판위에서 능을 향해 절을 하고 정자각丁字閣에 이르는데, 홍살문과 정자각을 연결하는 돌길을 참도參道라 한다.
참도參道는 향도(香道)와 어도(御道)로 구분되어 있다. 가운데 높은 길은 혼령이 다니는 향도香道라 하며 돌아가신 선왕先王의 혼령 즉 위패를 받들고 가는 제관만이 다닐 수 있는 길이고 낮은 돌길은 제향祭享을 올릴 임금이 걷는 길이다.
〈숭릉 비문 崇陵 碑文〉 (前文)
朝鮮國
顯宗大王 崇陵
明聖王后 祔左
〈숭릉 표비 음기 崇陵 表碑 陰記〉 (後文)
顯宗純文肅武敬仁彰孝大王崇禎十四年辛巳二月四日誕生己亥卽位甲寅八月十八日昇遐十二月十三日葬于楊州健元陵西南別崗酉坐之原在位十五年壽三十四
妃顯烈貞獻文德明聖王后金氏壬午五月十七日誕生辛卯冊 世子嬪己亥進封 王妃癸亥十二月五日昇遐甲子四月五日葬壽四十二
〈숭릉 표비문 역문 崇陵 表碑文 譯文〉
현종 순문숙무경인창효대왕은 신사년(숭정14, 1641년)2월4일에 탄생하여 기해년(1659년)에 즉위하셨다. 갑인년(1674년)8월18일에 승하하여 그 해 12월13일 양주(현 구리시)건원릉(태조) 서남쪽으로 떨어진 산줄기의 유좌(서쪽에서 동쪽방향)언덕에 장사지냈다. 재위는 15년, 나이는 42세이시다.
〈현종대왕숭릉표비각(顯宗大王崇陵 表碑閣)〉
風雨로 부터 신도비 또는 표비를 보호하는 건물이다.
〈정자각丁字閣〉 (寶物)
祭禮 때 제물을 진설陳設(차림)하고제례를 드리는 집이다.
위에서 보면 건물이 한자의 '丁' 字 모양과 같다하여 정자각이라 부른다.
정자각 동쪽과 서쪽에 오르는 층계가 있는데,
이는 원래 제례의식이 동쪽으로 진입하여 서쪽으로 내려가는 동입서출(東入西出)로 진행됨이 그 까닭이다.
〈숭릉 팔작지붕 정자각〉
숭릉의 이 정자각은 조선 왕릉 정자각 중 유일하게 남은 팔작지붕의 건물로 보물로 지정되었다.
엄숙하고 묵직한 느낌을 주는 맞배지붕만 보다가 이 팔작지붕의 숭릉 정자각을 보노라니 금시라도 날개짓하면 날아오를 듯이 날렵한 모습이다.
현종대왕능침,
곡장에서 뒤에서 바라본 정경.
2009년 6월 12일 촬영.
2023년 3월17일 담은 사진.
현종 숭릉 전경,
《숭릉 연지 崇陵 蓮池》
이 못은 현종 숭릉 입구 앞에 위치해 있다. 이 연지(蓮池)는 숙종 즉위년(1674년) 왕과 왕비의 능을 조성할 때 임시로 설치하는 관청인 산릉도감에서 만든 연못이다. 네모난 형태에 가운데 둥근 섬이 있는 방지원도형(方池圓島形)으로 네모는 땅을, 둥근 섬은 하늘을 상징하는 우주관과 자연관이 담겨 있다. 동구릉 내 9기의 왕릉 가운데 숭릉에만 연지를 두었는데, 이는 동구릉 내에 형성된 3개의 물길(건원릉과 휘릉 사이, 원릉과 경릉 사이, 숭릉과 혜릉 사이) 을 관리하기위해서 였다.
안내판에 의하면 이 연지는 처음 조성 된 숙종 대부터 영조, 정조, 고종 대까지 연못 둘레의 돌 축대를 정비하고 연꽃 종자를 陵官에게 주어 심고 관리하게 한 기록이 전한다. 이를 볼 때당시 연지에는 연꽃이 무성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숭릉 연지는 근대화를 거치며 점차 자연족, 인위적 원인으로 물이 드나드는 入出水口 등 제방시설이 없어지고 변형되는 등 경관이 크게 훼손되었다. 이에 2013년부터 2015년까지 발굴조사를 한 후 2017년 보수 정비를 마쳤으며, 현재 숭릉 연지의 면적 약 4,941㎡, 평균 수심 약 50cm 정도라고 한다.
방지원도형(方池圓島形)
방지원도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天圓地方' 사상에 따라 연못을 조성한 것으로 땅을 상징하는 네모반듯한 모양의 둘레에 하늘을 상징하는 둥근 모양의 섬을 가운데에 둔 것이다.
사진 2009년 촬영, 2023년3월촬영, - 鄕香 -